테라-아만전사 카르고 21화

2019-07-15 11:19
제7장 카르고에게 도전한 자들의 운명
제7장 카르고에게 도전한 자들의 운명
[데일리게임]

세 번째 목표로 정해진 심안의 제라이스트 역시 사냥당하는 수모를 면할 수 없었다. 망자의 토굴에서 제왕으로 군림하던 심안의 제라이스트는 카르고 파티의 척척 들어맞는 호흡과 절묘한 연수합격을 버텨 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다음으로 내정된 사냥감은 현상 수배된 악당들이었다. 탐욕의 미궁에 도사리고 있던 날라트호크와 카브 크라막투스, 쿠르바트 이 세 명의 수배자들에겐 천문학적인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잡으면 짭짤하겠는걸.”

현상금에 관심을 가진 카르고는 동료들을 이끌고 탐욕의 미궁으로 쳐들어갔다. 악명 높았던 세 명의 현상수배범들은 결국 카르고의 파티에 명성을 더해 주는 제물로 덧없이 스러져 갔다.

쟁쟁한 네임드 몬스터들과 현상 수배범들을 그야말로 거침없이 쓰러뜨려 나간 이후로도 그들의 활약은 이어졌다. 그리고 카르고 파티의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단연 카르고였다. 전사의 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거둘 수 없는 전과였기 때문이었다.

명성을 떨치면 의당 도전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카르고의 명성이 널리 퍼져 나가자 그것을 시기한 모험가들이 잇달아 레나르를 방문했다. 나름대로 명성을 떨친 전사와 마법사들이 카르고를 꺾기 위해 레나르로 모여든 것이다. 물론 그들이 목적을 이룰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다.

콰우우우.

거대한 마수 라돈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그것을 끝으로 거대한 라돈의 머리통이 맥없이 바닥에 늘어졌다.

쿠우우웅.

워낙 거대한 마수의 머리통이라 대지가 비명을 내질렀다. 라돈은 몸길이만 5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도마뱀 형상의 몬스터였다. 두꺼운 가죽은 칼도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질겼고 재생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상처를 입어도 금세 아물어 버린다. 그리고 전신에 날카로운 가시가 삐죽삐죽 돋아 있기 때문에 접근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육중한 꼬리에 정통으로 맞을 경우 판금갑옷을 입은 전사라도 그대로 으스러져 버릴 것이다.

그런 특성 때문에 사냥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내려진 네임드 몬스터가 바로 라돈이었다. 게다가 일정한 영역을 가지지 않고 필드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몬스터였기 때문에 잡아 봐야 몸뚱이 외에 전리품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라돈을 사냥했을 경우 크나큰 명성을 얻을 수 있다.

거기에 눈이 어두워진 모험가들이 심심찮게 파티를 구성해서 사냥에 나섰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라돈의 거대한 발에 짓밟히거나 꼬리에 맞아 시체조차 온전히 보존하지 못했다.

그런 유래를 가진 네임드 몬스터 라돈의 생명이 막 꺼져 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라돈을 사냥한 모험가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이건 사기야. 말도 안 된다고…….”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죽은 라돈의 머리통을 연신 후려갈기는 이는 우람한 체구의 인간이었다.

던필드라는 이름을 가진 이 전사는 상반신을 가리는 큼지막한 타워실드에 길이가 3미터에 달하는 묵직한 랜서(기병용 창)를 들고 있었다. 은은하게 금빛이 나는 판금갑옷은 한눈에 보기에도 비싸 보였다.

그는 지금 극도로 흥분해서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 대고 있었다.

“계속 도발기를 넣었는데 단 한 번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어. 눈까지 찔러 실명시켰는데도 날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돼!”

펄펄 뛰며 분노를 표출하는 던필드는 대륙 중부에서 널리 명성을 떨친 전사였다. 열 명이나 되는 동료들을 끌고 다니며 쟁쟁한 몬스터들을 쓰러뜨린 전력을 지닌 경험 많고 노련한 전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과거의 일이었다. 그는 카르고에게 도전했다가 꺾인 가련한 도전자 중 한 명이었다.

한창 잘나갔을 당시 그는 음유시인에게서 이름 하나를 들었다. 음유시인은 그에게 카르고라는 이름의 아만족 전사가 쟁쟁한 몬스터와 현상 수배범을 해치워 명성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다혈질에다 급한 성정을 지닌 던필드는 음유시인의 말을 듣고 분노했다. 그리고 동료들을 모두 버려두고 레나르를 향해 말을 달렸다.

“말도 안 돼. 그깟 허풍선이 아만족이 그토록 뛰어난 전사라고? 허! 테르카시아와 심연의 제라이스트를 단 네 명이서 잡아? 그게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내가 확실히 증명해 주지. 나 던필드는 내 이름 위에 다른 녀석이 존재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해.”

레나르를 찾아온 던필드는 머뭇거림 없이 카르고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카르고는 마침 동료들과 사냥을 마치고 여관에서 쉬고 있었다. 유명인이 된 탓에 카르고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던필드는 곧바로 여관을 찾아와 카르고를 불러냈다. 그리고 가슴을 탕탕 치며 도전을 선언했다.

“덤벼라, 카르고. 네 명성이 물거품이라는 사실을 이 던필드가 확실하게 증명해 주마.”

그러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던필드의 랜서는 채 10분도 싸우지 못하고 부러져 버렸다. 타워실드 역시 형편없이 우그러진 채 날아가 버렸다. 남은 것은 도전한 죄로 카르고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것뿐이었다.

칼리아스를 허리춤에 꽂아 넣은 카르고가 주먹의 마디를 우두둑 꺾었다.

“무기를 잃었으니 이젠 맨손으로 푸닥거리를 해 볼까?”

무기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던필드는 전의를 꺾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맨손으로 맞서 싸우기에 카르고는 너무도 강한 주먹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던필드는 한참을 두들겨 맞은 끝에 뻗어 버렸다.

경험 많고 노련한 전사답게 던필드의 맷집은 평범한 전사에 비해 월등했다. 그 탓에 던필드는 불행하게도 카르고의 돌주먹에 몇 대 더 얻어맞아야 했다. 뻗어 버린 던필드는 무려 사흘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겨우 몸을 추스른 던필드를 기다리는 것은 살벌한 카르고의 눈빛이었다. 그는 결국 카르고의 애병인 칼리아스의 날에 흠집을 냈다는 죄목으로 파티의 일원이 되어야 했다.

“죽을래? 아니면 무기 수리비를 몸으로 벌어 갚을래?”

“모, 몸으로 갚겠다. 제발 때리지만 말아 다오.”

특급 장인답게 스트라비의 무기 수선료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싸다. 그 값을 치르기 위해 던필드는 강제로 파티원이 되어 사냥에 가담해야 했다. 그리고 카르고와 사냥을 한 번 하고 난 뒤에는 자신을 정식으로 파티에 받아 달라고 떼를 썼다.

“나를 동료로 인정해 줘야겠어. 널 꺾는 날이 올 때까지 함께 다니겠다.”

“좋다. 동료가 될 만한 실력임을 인정한다. 물론 나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말이야.”

카르고의 파티에 전사 하나가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이봐, 던필드. 억지 부리지 마. 내가 라돈에게 얼마나 치명타를 먹였는지 알아? 급소만 골라 찔러 넣었는데도 눈짓 한번 보내지 않더라고. 대관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얼굴을 찡그리며 피에 젖은 칼을 닦는 자는 귀가 비정상적으로 긴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하늘하늘한 금빛 머리카락에 잡티 하나 없는 피부, 조각상과 같은 이목구비는 마주치는 여인들의 심금을 단숨에 사로잡을 정도로 수려했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하이엘프였다. 아르보레아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문명을 지닌 하이엘프는 거만하기로 소문난 종족이었다. 다른 종족을 깔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좀처럼 친해지기 힘든 종족이기도 했다.

이 하이엘프 청년의 이름은 라프라스. 던필드와 마찬가지로 카르고의 명성을 확인하기 위해 레나르를 방문한 하이엘프 전사였다.

강하기로 소문난 하이엘프 전사들 중에서도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라프라스는 카르고의 명성을 인정하지 않고 도전을 신청했다. 그러나 그의 검은 카르고의 도끼에 의해 여지없이 꺾여 버렸다.

라돈의 피를 흠뻑 뒤집어쓰긴 했지만 라프라스의 수려한 용모는 전혀 가려지지 않았다. 잘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눈살을 찌푸린 라프라스가 마치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을 카르고에게 던졌다.

“저건 한 마디로 몬스터야. 그렇지 않다면 작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어. 네 다리의 힘줄을 모조리 자르고 뱃가죽을 갈라냈음에도 불구하고 라돈이 나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어. 세상에 이럴 수는 없는 법이야.”

그들의 시선을 맞받고 있는 거대한 체구의 전사. 머리에 난 뿔이 위압적으로 휘어진 모습이 인상적인 전사는 마치 딱정벌레의 껍질같이 번들거리는 전신갑옷을 입고 있었다.

카르고는 인간과 하이엘프 두 전사의 집요한 시선을 받으며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불만인가? 원한다면 도전하라. 언제든지 받아 주마.”

그 말에 두 전사의 안색이 살짝 경직되었다. 마구 화를 터뜨리던 조금 전과는 달리 그들은 겁을 집어먹은 듯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카르고의 시선이 던필드에게로 향했다.

“던필드. 너부터 시작할까?”

이제 카르고는 발키온 연합의 공용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나 벙어리 노릇을 할 수 없었기에 세실리아로부터 집중적으로 개인교습을 받은 결과였다. 약간 어눌하기는 했지만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카르고의 말에 던필드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미쳤지. 저 괴물에게 어찌 겁도 없이 대들었단 말인가?’

곁눈질로 라프라스의 얼굴을 훔쳐본 던필드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직까지는 카르고에게 도전할 때가 아니었다.

“아냐. 불만 없어.”

그가 슬며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앞니 서너 개가 부러져 나간 모습이 다소 실없어 보였다.

“물론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그때 두들겨 맞은 후유증 때문에 지금도 비만 오면 삭신이 쑤셔 온다고……. 도전은 추후에 하도록 하지, 카르고.”

“뭐, 뭐야?”

급격히 꼬리를 내리는 던필드를 라프라스가 마치 배신당한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함께 힘을 합쳐 도전해 보자고 선동해 놓고 먼저 발을 빼는 것이다.

배신감에 치를 떠는 라프라스의 귓전으로 스산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그럼 라프라스. 네가 도전할 것이냐?”

그 말을 듣자 라프라스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카르고에게 도전할 당시 그는 카르고에게 주먹 한 방을 얻어맞고 꼬박 하루 동안 인사불성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이를 갈며 재도전을 선언했었다. 쌍검의 라프라스라는 이름으로 하이엘프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한 그는 단 한 번의 승부로는 카르고를 인정하지 못했다.

“힘 하나는 좋은 놈이로군. 하지만 속도로 승부하면 날 당해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카르고의 스피드는 오히려 라프라스를 능가했다.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라프라스의 쌍검을 카르고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쳐 냈다. 그리고 지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라프라스에게 분노의 응징을 가했다.

“갑옷에 흠집이 났군. 각오해라.”

아끼던 갑옷에 흠집을 낸 죄로 라프라스는 떡이 되도록 얻어맞았고 무려 일주일 동안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그리고 카르고의 갑옷 수선료를 갚기 위해 던필드의 뒤를 이어 파티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었다. 그런 만큼 카르고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라프라스가 이를 갈며 던필드를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자식. 둘이서 덤비면 틀림없이 이길 수 있다고 선동할 때는 언제고…….’

외면하는 던필드에게서 시선을 거둔 라프라스가 울상을 지었다.

“불만이 있다는 뜻이 아니었어. 그저 네가 보여 준 능력에 자괴감을 느껴서 그런 거야. 물론 도전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어. 아직은 실력을 더 키워야 할 때야.”

말을 마친 라프라스가 가슴을 조이며 처분을 기다렸다.

“흠. 그렇다면 도전하지 않겠다는 듯으로 받아들이겠다. 도전은 언제든지 환영한다.”

그 말에 라프라스가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늘 높은 줄 모른다는 하이엘프 종족의 자부심, 그 고결한 자존심도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그들의 뒤에서는 또 다른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플레임 스트라이크 한 방만 더 먹였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여인은 라프라스와 비슷한 생김새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길쭉한 귀가 금발 사이로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하얀 피부에 그림 같은 이목구비는 지나가는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셀리카라는 이름의 이 하이엘프 여인은 눈에서 연신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시선을 받고 있던 세실리아는 여유 있게 웃었다.

“어쨌거나 마지막 플레임 스트라이크를 쏘기 전에 라돈이 죽었잖아요. 우린 마법사예요. 정황증거가 아니라 드러난 수치로 승부해야죠.”

그 말에 셀리카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쨌거나 라돈의 사냥에 들어가기 전에 설치해 놓은 마법 측정기에 따르면 세실리아가 그녀보다 라돈에게 많은 타격을 입힌 것이 확실했다.

큰 것 한 방을 좋아하는 성품답게 셀리카는 오랫동안 마력을 끌어모아 막강한 위력의 플레임 스트라이크를 만들어 냈다. 쏜살같이 날아간 플레임 스트라이크는 라돈에게 무시할 수 없는 타격을 안겨 주었다.

반면 세실리아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얼음 화살을 날려 라돈의 질긴 가죽에 연속으로 꽃아 넣었다. 큰 것 한 방이 아니라 자잘한 잽을 끊임없이 날린 것이다. 그런 자잘한 공격이 셀리카의 큰 것 한 방을 능가해 버린 것이다. 마법 측정기에 결과가 명확히 나와 있었으므로 부정할 수도 없었다.

더 이상 억지를 부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셀리카가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수치 측정기는 마탑에서 거금을 주고 셀리카가 직접 주문한 아티팩트였다. 측정치가 틀렸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패, 패배를 인정한다. 네가 이겼어.”

“야호! 셀리카 언니를 이겼다!”

기뻐서 폴짝폴짝 뛰는 세실리아를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셀리카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어떻게 이런 지경에 처했을까? 새파란 인간 마법사에게까지 지다니…….’

서러움 때문인지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셀리카는 폭염의 마녀라는 애칭을 가진 하이엘프 마법사였다. 하이엘프는 통상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셀리카의 성품은 인간 못지않게 과격한 성향을 띠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마법에 재능을 드러낸 셀리카는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마법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남과 다른 셀리카의 성품은 마법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정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