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열쇠 3화

2019-10-0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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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3화

1. 강의 신 하백(2)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골목길을 뛰어 들어온 강일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로 가만히 숨어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숨어 있던 강일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는 조심스럽게 고시원 건물로 다가갔다.

고시원의 입구에서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본 강일은 빠르게 고시원 입구로 뛰어 들어갔다.

바로 그때 고시원의 입구와 연결되어 있는 작은 창문이 열리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너 강일이 어디 갔었어?”

“아! 세진이 형.”

고시원 총무인 세진이었다.

사법고시 공부를 하다가 결국 포기했는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고시생 형이었다.

강일이 이 고시원에 산 지도 삼 년이 다되어 가는데 강일이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있던 세진이었다.

지독하게도 운이 없는지 번번이 일이 점 차이로 떨어졌다며 한숨을 쉬는 것을 본 것만 여러 번이었다.

자신도 그렇지만 이 고시원에 사는 이들 대부분이 다들 비슷한 처지였다.

강일은 어디 갔었냐는 말에 말을 더듬거리다가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시……골집에 갔다 왔어요.”

“뭐? 일주일이나?”

“예?”

강일은 일주일이나 지났다는 것에 상당히 놀랐다.

잠깐 물속에 있다가 하백이라고 하는 강의 신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설마 일주일 동안이나 강 속에 있었다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변명처럼 시골집에 갔다 왔다는 변명을 하고서 실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무려 일주일이나 물속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일주일 동안 강 속에 있다가 나왔다면 인간이 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그렇게 됐어요.”

“그래. 그리고 너 이번 달 고시원비 아직 안 냈다.”

처음으로 대화를 하는 상대와 하는 말이 결국 돈이라는 것에 강일은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너 찾는다는 사람들이 왔었는데.”

강일은 세진의 말에 몸에 힘이 들어갔다.

분명 그들일 터였다.

세진은 걱정스러운 듯이 강일을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어제까지 계속 너 찾아서 오던데 오늘은 안 왔어. 그런데 너 무슨 일 있냐?”

“아니에요. 별것 아니에요. 고시원비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래! 알았다.”

강일은 고시원 총무인 세진에게 인사를 하고서는 자신의 방으로 급하게 들어와서는 문을 잠갔다.

그러고서는 몇 번이나 문이 잠겼는지 확인을 했다.

“하아! 하아! 하아!”

긴장감으로 인해 숨이 찼다.

자신의 고시원을 지금까지 찾아왔다는 소리였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강일은 삼 년 동안이나 머물렀던 이곳에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망가는 듯한 상황에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 잡힌다면 정말로 몸의 장기라도 빼앗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수중에 돈이 없어 어디로 갈지 쉽게 정할 수도 없었다.

“정말 암담하네. 암담해.”

강일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살았다는 안도감에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더욱이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자신의 손에 있었다.

“이것만 있으면……. 이것만!”

강일의 품 안에는 하백으로부터 받은 신의 선물 상자가 있었다.

물론 그 안에는 뭐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열쇠 또한 가지고 있으니 지금 당장 열어 보면 알 것이었다.

강일은 좁은 고시원 바닥에 낡은 궤짝을 마치 신주 단지 모시듯이 내려놓았다.

무척이나 오래되어 보여서 마치 골동품 같은 느낌을 주는 궤짝이었다.

“인사동 같은 골동품집에 가져가면 돈 좀 주겠다.”

강일은 워낙에 돈이 궁하다 보니 하백이 준 낡은 궤짝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낡기는 했지만 궤짝 자체는 제법 튼튼한 데다가 고풍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뭐가 들어 있을까? 그래도 신이 준 선물 상자니 금괴나 아주 귀한 뭔가가 있겠지?”

강일은 낡은 궤짝에 얼굴을 붉히며 침을 삼켰다.

하백이 꽝도 있다고 했지만 강일의 머릿속에 그런 하백의 말은 들어 있지도 않았다.

강일은 자신의 손에 들린 낡은 구리 열쇠를 바라보았다.

현대의 그런 정교한 열쇠와는 달리 옛날 방식의 열쇠였다.

위조를 한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 법한 간단한 구조였다.

물론 무려 신의 열쇠였기에 위조가 될 리도 없고 이 모양 그대로 만든다고 해도 궤짝의 자물쇠를 열 수 있을 리도 없었다.

드륵!

강일은 조심스럽게 자물쇠에 열쇠를 끼워 넣었다.

조금 뻑뻑한 감이 있었지만 제법 용을 쓰니 열쇠는 자물쇠의 구멍에 완전히 들어갔다.

낡은 구리 열쇠이다 보니 잘못 힘을 줘서는 부러질지 몰라 조심스러운 강일이었다.

철컥!

그런 강일의 걱정과는 달리 구리 열쇠는 너무나도 쉽게 자물쇠를 열었다.

자물쇠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놓은 강일은 살짝 떨리는 손으로 낡은 궤짝을 열었다.

“으윽!”

낡은 궤짝이 열리자 환한 빛과 함께 향긋한 꽃 냄새가 궤짝으로부터 풍겨 나왔다.

그 꽃냄새는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은은하게 강일의 고시원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강일은 마치 공기 좋은 초원에 와 있는 느낌을 받으며 정신적인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 향기 좋다.’

강일은 그 빛과 향기에 뭔가가 있다는 생각에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귀한 것이 들어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꽃향기에 자연히 눈이 감겼던 강일은 천천히 눈을 뜨고서는 궤짝의 안을 바라보았다.

“…….”

놀란 준비가 되어 있던 강일의 얼굴에서 점점 미소가 사라졌다.

아니, 점차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것을 결코 믿고 싶지 않다는 듯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제길!”

욕설과 함께 강일은 궤짝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손으로 움켜쥐고서는 방바닥에 집어 던져 버렸다.

방바닥에 내팽개쳐진 것은 다름 아닌 꽃 한 송이였다.

반투명한 색상의 꽃잎의 조금은 생소한 꽃이었지만 고시원 방을 가득 채운 꽃향기가 이 꽃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하아! 고작 꽃이라니. 이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지?”

강일은 설마 신의 선물 상자에서 꽃 한 송이가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긴 뭘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어. 살려 준 것만 해도 어디냐. 그래도 향기는 좋네.”

강일은 실망을 하기는 했지만 이내 이해하기로 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었다.

하백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목숨을 구함받은 강일이었다.

하백이 준 신의 선물 상자에서 꽃 한 송이가 나왔다고 한들 화를 낼 이유는 없었다.

그것은 강일이 더욱 잘 알고 있었다.

강일은 힐끔 방바닥에 널브러진 꽃을 바라보았다.

제법 강하게 방바닥에 던졌는데도 망가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강일은 컵에 반쯤 남은 생수병의 물을 따른 다음에 꽃을 꽂아두었다.

삭막한 고시원 방 안이 조금은 화사한 느낌이 들었다.

“내일 궤짝이나 팔아야겠다. 그리고 고시원 옮기려면 아르바이트도 좀 하고.”

강일은 점점 눈이 감기는 것에 이미 상당히 강물이 말랐지만 찝찝한 느낌의 옷들을 전부 벗고서는 그대로 좁은 침대에 몸을 눕혔다.

너무나도 피곤한 하루를 보낸 느낌이었다.

그렇게 금세 잠이 든 강일은 자신이 물 잔에 꽂아 둔 꽃의 변화를 볼 수 없었다.

화아악!

아늑한 꽃향기가 꽃에서부터 퍼져 나가서는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고서는 그 꽃향기가 강일의 콧속을 통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천연화.

그 꽃의 이름이었다.

천년이라는 시간을 피어 있는 꽃이라는 천연화는 천상계의 보물 중에 하나였다.

천연화의 꽃향기는 피로를 풀어 주며 정서적인 안정을 이루어 주는 꽃이었지만, 그 꽃 자체를 먹으면 무협의 영약처럼 강인한 근골과 힘을 가져다준다는 신비한 꽃이었다.

하지만 강일이 천연화의 정체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단지 신비로우면서도 좋은 향기가 난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일의 육체는 천연화의 향기에 의해 피로가 풀리고 긴장으로 인해 뭉쳐져 있는 근육이 풀어지고 있었다.

더욱이 과도하게 한강물을 먹으면서 폐가 상해 있던 강일이었다.

그 폐도 아주 천천히 치료가 되고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은 대단히 느리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의식을 하지 못할 정도로 느리게, 하지만 확실하게 강일은 고통스러웠던 얼굴의 표정이 점차 편안해지고 있었다.

그날 강일은 오랜만에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강일은 정말이지 가뿐한 느낌을 받으며 잠에서 깼다.

“으아아! 잘 잤다.”

강일은 정말이지 이렇게 잘 잔 것이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피로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에 미소를 지었다.

“저 꽃향기 때문인가?”

강일은 천연화로부터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꽃향기를 맡으며 보통 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래 봐야 꽃에 불과했기에 인생 역전이나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꽃이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강일은 정서적으로 안정을 준다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강일은 몸이 가뿐한 것은 좋았지만 이내 근심이 밀려왔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강일을 옥죄어 왔다.

더욱이 하백이 자신에게 내리는 임무 또한 걱정일 수밖에 없었다.

“정신 차리자! 강일! 그래도 다시 살았잖아! 파이팅!”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강일은 자신이 다시 숨을 쉬고 살 수 있다는 것에 기운을 냈다.

“빚도 갚고 돈도 벌고 결혼도 하고.”

강일은 사채업자에게 쫒기고 있었지만 빚을 갚지 않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상대가 아무리 나쁜 자들이라고 해도 돈을 빌린 것은 자신이었고 그것을 갚아야 새 출발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겨우 되살아난 삶에서 더 이상의 도망은 가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쉽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아자! 아자! 아…….”

강일은 왜인지 기분이 고양이 되어 힘을 주어 파이팅을 하려고 했다.

쿵!

“시끄러!”

“죄송합니다!”

하지만 옆방의 남자 목소리와 함께 주먹으로 벽을 때리는 소리에 강일은 임을 다물어야만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얼굴에서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