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위저드 10화

2020-03-02 13:03
샤이닝위저드 10화
[데일리게임]
길고 붉은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풀어 헤쳐져 제멋대로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이분은 파라나, 북부산맥의 바바리안 출신입니다.”

“바바리안!”

사람들은 상당히 놀란 듯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웅성거렸다. 보통 때에는 절대로 산을 내려오지 않고 자신들의 영역에서만 사는 야만인 전사들이 왜 남부까지 내려왔단 말인가?

하지만 파라나는 그런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 듯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했다.

“파라나입니다.”

대답하는 목소리는 의외로 가늘었다.

라크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파라나를 보았다. 이름도 그렇고, 목소리도 역시 남자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단지 외모와 체격은 절대로 남자였다.

“혹시?”

“여성 전사분이십니다.”

머스크가 얼른 대답했다. 사람들은 놀라서 입만 벌렸다.

그들 중 대부분은 바바리안을 처음 보았다.

그렇기에 바바리안의 경우 여성과 남성이 같은 생김새를 하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지금의 파라나를 보고 혹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했을 뿐이다.

촌장은 잠시 파라나를 보았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확실히 생김새로 보면 바바리안이 맞는 것도 같았다.

여성이라는 것은 믿기 어려웠지만 본인이 그렇게 말하고 머스크도 증인이 되었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촌장은 고개를 몇 번 좌우로 젓고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허, 80이 넘게 살았지만, 바바리안을 보는 것은 처음이구려. 소문에 의하면 그대들은 드워프들과도 친해서 드워프들은 오직 그대들하고만 거래를 한다는데 정말이오?”

“드워프들, 친합니다. 이 도끼도, 그들의 것입니다.”

파라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등에 멘 도끼를 꺼내 촌장에게 보여 주었다.

과연 도끼의 끝에는 물결과도 같은 문양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금속을 섞어서 도끼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금속을 섞어서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게 하는 기술은 드워프들에게만 있다. 아마 이 도끼는 바위를 내려쳐도 날이 상하지 않을 것이다.

촌장은 정말 좋은 무기를 보았다고 생각하며 앞에 서 있는 바바리안에게 엄지손가락을 펴 보였다.

파라나는 씨익 하고 웃으며 말했다.

“파라나는 용병, 대가를 받았으니, 싸웁니다.”

“말을 잘 하시는구려.”

“산을 내려온 지 일 년, 배웠습니다.”

“과연 그대도 사연이 있는 모양이구려.”

“......”

사연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있다는 소리이다.

촌장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과거 없는 용병은 없다. 그걸 자꾸 묻는 것이 큰 실례라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는 한쪽에 서 있는 나르타를 보며 말했다.

“나르타 씨, 이분들을 보시오. 젊은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훌륭하게 일을 처리했구려.”

“하하하, 정말입니다. 더 없이 믿음직한 분들이군요. 나르타입니다.”

나르타는 크게 웃으며 앞으로 나와 길버트와 악수를 했다. 슈트 사제나 파라나는 아무래도 대장 역할을 할 수 없는 입장인 만큼 길버트가 임시로 이들의 대장이 된 듯 했다.

나르타는 악수를 하면서 길버트의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으로 상대가 상당한 수련을 쌓은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용병이 아닌 전문적인 기사의 훈련을 받은 자의 느낌이 들었다.

‘훗, 퇴역기사 나부랭이인가?’

기사수업을 하다가 품행이 나쁘거나 수련 자체가 힘들어서 기사가 되지 못한 자들이 용병이 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런 자들은 대부분 전문적인 전투지휘훈련과 작전 수행에 대한 수업을 받았기에 어느 정도는 인정을 받는다.

길버트는 아무래도 그런 쪽인 것 같았다.

‘뭐, 상관없겠지.’

나르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길버트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소? 일단은 쉬는 게 낫지 않겠소?”

도시에서 하루를 꼬박 걸어야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싸우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길버트는 고개를 저었다.

“바로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쪽이 저쪽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면 저쪽도 이곳을 살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대비를 하게 됩니다.”

“으음, 피곤하지 않겠소?”

“다행히도 오늘 아침 슈트 사제께서 축복을 해 주셨기 때문에 피로가 덜하군요.”

길버트의 말에 나르타는 대단하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약간 소리를 죽여 말했다.

“호오, 과연 사제님께서 같이 계시니 편하구려. 그럼 밤에 기습을 가합시다.”

하지만 길버트는 그 의견도 좋지 않다는 듯 다시 말했다.

“시간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아무래도 이곳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가 불리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어젯밤 야영을 하고 새벽에 온 것입니다.”

“으음, 그랬구려.”

그때서야 나르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어째서 이들이 새벽에 마을에 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밤새 산속을 걸어 온 것이 아니다. 적당한 곳에서 야영을 하며 쉬었다가 새벽에 도착한 모양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라크는 미소를 지었다.

‘길버트라는 사람은 상당한 전술가인듯 하군. 적어도 실력만큼은 신용할 만하다.’

그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는 촌장에게 말했다.

“길버트 씨의 말씀대로 지금 출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길안내는 저희들이 하되, 적당한 장소에서 진형을 짜고 용병분들의 지휘를 받도록 하지요.”

“그게 좋겠군요. 전투가 벌어지면 후방에서 지원을 해 주십시오.”

길버트는 라크의 의견이 마음에 든다는 듯 다시 말했다. 그렇게 되자 모두들 동의를 했다.

나르타는 두 손을 위로 펼쳐들고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뭐, 쉬지 않아도 좋다면 그렇게 합시다. 그럼 바로 출발하지요.”

“그럼 수고를 해 주시오. 가능한 한 크나큰 피해가 없이 저들을 쫒아내기를 천신께 기원하겠소.”

“쫒아내는 걸로는 부족합니다. 제가 필요한 것은 샬칸의 목이니까요.”

나르타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의 눈빛은 꼭 표적을 잡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바로 몸을 돌려 일행들과 함께 마을 밖으로 나갔다.

마을 청년들과 새로 온 용병들도 나르타의 뒤를 따랐다.

-끼익, 쿵

그들이 모두 마을 방벽을 나서자 안쪽에서는 문을 닫고 굳게 틀어막았다. 지금은 마을을 지킬 젊은이들이 모두 밖으로 나간 상황이기 때문에 마물이라도 나타나면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방벽 위로 고개를 내민 아이들이 용병들과 자신들의 형뻘인 사냥꾼들에게 외쳤다.

“그놈들, 무찔러 버려요!”

“빨리 와요!”

“혹시 돌아오다가 맛있는 열매 있으면 따와요.”

-딱

“아코, 왜 때려?”

“싸우러 가는 사람한테 열매를 따오라는 게 말이 되냐?”

“그래도 배가 고프단 말이야.”

“시끄러. 나중에 형들 오면 수고하셨다고 우리가 나가서 따다 줘야지. 언제까지 애처럼 응석만 부릴래?”

“야, 그럼 우리가 애지. 어른이냐?”

“이게, 아직도 반성을 못하고!”

-따따딱

“아아아앙.”

아이들의 처절한 자체처벌에 의해 결국 한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를 들은 길버트는 미소를 지으며 라크에게 말했다.

“마을 아이들이 상당히 재미있구만. 자네도 어렸을 때 저렇게 놀았나?”

“전 이 마을 출신이 아닙니다.”

“어? 이런, 난 완전히 자네가 사냥꾼인줄 알았네.”

“사냥꾼인 것은 일단 맞습니다만, 몇 달 전에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왔지요.”

“그런가?”

길버트는 상당히 이상하다는 듯 라크를 보았다.

사냥꾼은 대부분 자신이 익숙한 지형에서 사냥을 하는 법이다. 짐승들이나 마물들이 대부분 자신의 영역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른 지방으로 떠돌아다니는 자는 대부분 뭔가 문제가 있다는 소리가 된다.

라크의 얼굴생김을 봐서는 범죄형이 아닌데 왜 이런 청년이 집도 없이 외지를 떠돌아다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무크가 웃으며 말했다.

“라크는 마물 전문 사냥꾼입니다. 실력은 최고고, 힘도 마을에서 가장 세지요.”

“오, 마물 전문 사냥꾼!”

길버트를 위시해서 새로 온 사람들은 일제히 감탄성을 터뜨렸다.

마물을 사냥하는 것은 일반 사냥에 비해 훨씬 위험하다. 그런 마물을 사냥하는 자들은 상당히 드물다. 또한 보통 마물 사냥꾼은 웬만한 기사들 수준으로 강하기 때문에 용병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젊은 청년이 마물을 사냥한다니?

길버트는 곧 웃으면서 라크에게 사과를 했다.

“이거 실례했군. 마물 전문 사냥꾼이라면 나보다도 강할지 모르지. 잘 부탁하네.”

“과찬이십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라크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별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약간 멍청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런데 옆에서 파라나가 끼어들었다.

“마을에서 가장, 힘이 세다고? 그렇게 안 보이는데, 정말 강한가?”

무크가 라크 대신 대답을 했다.

“물론입니다! 멧돼지도 맨손으로 때려잡는 친군데요?”

“오호, 그럼 나중에, 나랑 한번 겨뤄보자.”

파라나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자 길버트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또 하는 건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아가씨.”

“강한 팔은, 여성의 미덕이다.”

“어헉!”

“그럼 역시!”

그들은 드디어 확신을 할 수 있었다. 바바리안은 여성이 강하다! 그들은 다시 호기심에 어린 눈으로 파라나를 보았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그들 일족의 남성이 어떤가이다.

“저기요. 파라나 양.”

호기심을 못 참는 성격의 인간은 어디에도 있다. 무크가 바로 그랬다. 그는 파라나의 어깨근육을 힐끔힐끔 곁눈질로 보면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뭐지?”

“일족의 남자들은 용맹한가요?”

“그걸 왜 묻지?”

파라나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무크는 놀라서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그냥요.”

-퍽

대답대신 날아온 파라나의 손은 무크가 미처 피할 여유를 주지 않고 그의 뺨을 때렸다.

말하자면 따귀를 때린 것인데, 무크는 그 충격으로 몸이 허공으로 붕 하고 떠올라 옆에 있는 나무에 부딪치고는 땅에 떨어졌다.

“앗! 무크, 정신 차려!”

마을 청년 중 한명이 기겁해서 무크를 보았다. 그의 입에서 뽀글뽀글 올라오는 거품은 정말로 하얀 색이었다. 하지만 곧 그 거품에 피가 섞여 나왔다. 입속이 헐어 피가 흘러나오는 모야이었다.

“이런, 파라나에게 일족의 남자에 대해 묻는 것은 금기라네.”

길버트는 한숨을 쉬며 이미 기절한 무크에게 설명했다. 미리 이야기 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고 속으로 한탄하면서.

라크는 그 광경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부상자가 발생한 셈이다.

다행히도 슈트 사제가 얼른 무크에게 신성마법을 시전 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입속이 허물어진 것은 치료가 된 듯 했다.

그러는 사이 일행은 목적지에 거의 도달했다. 마을을 떠난 지 거의 반나절이 지난 후였다.

그들은 일단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나르타의 부하용병중 하나가 언덕위로 올라가 산적들의 동태를 살피고 왔다. 그의 몸놀림은 산속에서도 사냥꾼들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민첩하고 은신에도 능했다.

“저놈들은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는 그렇게 보고를 하고 앞장을 서서 나아갔다.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이다. 사냥꾼들은 어쩌면 이 사람의 전직도 사냥꾼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순순히 그 뒤를 따랐다.

계곡을 빙 돌아서 반대편 언덕위로 올라가니 산적들이 있는 장소가 한눈에 보였다.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그곳에 방벽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산채를 건설할 생각인 듯 했다.

길버트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방벽의 크기를 보건대 산채가 완성된다면 적어도 몇 백 명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겠군.”

“지형적 요건도 좋군요. 그리고 이곳은 안내자가 있어도 하루는 꼬박 산을 타야 하는 곳이니 토벌대가 들어오기도 힘들 겁니다.”

“으음, 어쩌면 우리가 늦지 않은 것이 정말로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군.”

김운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