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롤드컵 약속 지킨 남자 '프로즌' 김태일을 만나다

2017-09-06 00:06

지난 4월 데일리e스포츠는 터키에서 활약하고 있는 페네르바체의 미드 라이너 '프로즌' 김태일을 만났다. 당시 김태일은 터키 생활을 전하면서 "윈터 시즌 동안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터키 리그에서 우승해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4개월이 지난 8월 김태일은 약속을 지켰다. 서머 정규 시즌에서 1위를 차지했고 결승전에서는 터키 리그를 대표하는 팀인 슈퍼매시브를 3대0으로 완파하면서 우승컵과 롤드컵 진출 티켓을 손에 넣었다.

4개월 동안 김태일과 페네르바체는 어떤 변화를 겪었기에 터키 리그에서 우승했는지 궁금했다. 9월부터 한국에 부트 캠프를 차리고 전지 훈련을 시작하는 '프로즌' 김태일을 만나 우승의 원동력과 근황, 롤드컵에서의 목표를 들었다.


◆8할은 '무브' 강민수 덕분
김태일이 서머 시즌에서 페네르바체라는 팀을 이끌고 터키 리그를 제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새로운 정글러 덕분이었다. 중국, 유럽 등을 돌면서 선수 생활을 했던 '무브' 강민수가 영입되면서 김태일은 오더 역할을 내려 놓으면서 라인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서머 우승의 이유로도 강민수가 짐을 덜어준 덕분이라고 계속 강조했다.

Q 롤드컵이라는 목표를 이뤄냈다. 기분이 어떤가.
A 정말 좋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택했을 때에는 한국에서 우승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종목이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롤드컵이라는 것에 자연스레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터키에서 이뤄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Q 지난 4월에 가진 인터뷰에서는 윈터 시즌-터키에서는 스프링 시즌이 아닌 윈터 시즌이라고 부른다-을 마친 뒤에는 아쉬움이 많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많이 고쳐졌나.
A 페네르바체에 처음 들어갔을 때에는 고칠 점이 너무나 많은 팀이었다. 윈터 시즌을 치르는 내내 수정해야 할 점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 같다. 서머를 앞두고 정글러로 '무브' 강민수를 영입했는데 신의 한 수가 된 것 같다.

Q '무브' 강민수라면 지난 시즌까지 유럽 팀에서 활동하던 그 정글러인가.
A 맞다. 중국 2부 리그 팀에서 뛰었고 한국 팬들에게는 유니콘스 오브 러브의 2016년 로스터에 들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2017년 윈터에는 다크 패시지에도 몸을 담은 적이 있다. 그러다가 서머 시즌을 맞아 페네르바체에서 영입하면서 같이 호흡을 맞췄다.

Q 이전부터 강민수를 알고 있었나.
A 강민수와는 에일리언웨어 팀에서 같이 뛴 적이 있다. 그 때 우리 팀이 성적을 내지 못해서 팬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강민수의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굉장히 머리가 좋은 정글러다.

Q 어떤 능력이 발군이었나.
A 강민수는 모든 수치를 머리 속에 넣고 있는 선수다. 정글러라면 우리 팀의 정글 몹들이 언제 재생되는지, 드래곤과 내셔 남작을 언제 가져갔고 부활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당연히 체크해야 하는 사항이다. 강민수는 이걸 넘어서서 우리 팀과 상대 팀 챔피언의 궁극기 재생 시간, 스킬의 재활용 대기 시간, 스킬당 데미지 등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필요한 항목들을 모두 머리 속에 넣고 있다. 세부 사항들을 모두 외우고 있는 선수이기에 경기 내내 브리핑을 해주고 이런 점이 우리 팀에게 큰 도움이 됐다. 강민수가 에드워드 게이밍의 하부 팀에서 뛸 때 'Clearlove' 밍카이에게 많이 배웠다고 하더라. 밍카이가 이런 수치들을 외우고 동료들에게 알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따라했다고 들었다.


Q 그렇게 좋은 선수를 어떻게 영입했나.
A 에일리언웨어 때부터 친분을 맺었고 솔로 랭크를 할 때면 강민수와 듀오로 계속 플레이할 정도로 친하다. 강민수가 중국을 거쳐 유럽, 터키로 오면서 같이 뛰자는 이야기를 계속 했다. 유니콘스 오브 러브에서 계약 기간이 맞지 않아서 잔류하지 못했고 터키 팀인 다크 패시지에서는 강민수의 장점을 인정받지 못했다. 우리도 서머를 앞두고 정글러 교체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는데 팀이 없다고 하길래 감독, 코치에게 '무브'를 영입하자고 내가 이야기했다.

Q 4월에 인터뷰했을 때 미드 라이너로 뛰면서 게임 전체를 읽고 동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 힘들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민수와의 역할을 많이 나눴나.
A 내가 윈터 시즌에 해야 했던 일의 8할을 강민수가 덜어갔다. 정글러로서의 임무를 충실하게 해준 것은 물론이고 경기를 읽는 역할까지 모두 강민수가 가져갔다. 나는 라인전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서머 시즌 우리 팀 경기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내가 라인전에서 밀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강민수가 전황을 다 읽어주고 동료들에게 브리핑해준 덕이다.

Q 강민수의 단점은 없나.
A 강민수가 꼼꼼하게 체크하는 부분은 강하지만 큰 부분에 대해 과감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생겼을 때는 주저한다. 그 때에는 내가 오더를 내린다. 내셔 남작을 사냥해야 할 때나 5대5로 크게 붙어야 할 때, 순간이동을 쓰면서 합류전을 펼쳐야 할 때는 내가 결정한다.

Q 트러블은 없었나.
A 강민수가 페네르바체에 오고 나서 1주일이 지났을 때였나. 한 번 크게 싸웠다. 내가 강민수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정말 좋은 정글러를 만났다는 생각에 연습 경기를 할 때 3인분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강민수에게 중압감을 줬더니 뭐라고 하더라. 둘이 밖에 나가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했고 내가 터키에서 뛰면서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했고 강민수도 서서히 적응해갈테니 시간을 달라고 해서 풀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 승승장구했다.


◆페네르바체 회장 "김태일은 제2의 김연경"
롤드컵 진출을 확정짓는 무대였던 슈퍼매시브와의 서머 결승전 현장에는 페네르바체의 회장도 관전차 와 있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페네르바체는 축구, 농구, 배구 등 다양한 종목의 프로 구단을 갖고 있었고 e스포츠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 보고 리그 오브 레전드 팀도 창단했다.

2016년 1월 팀을 만들었고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롤드컵이라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서는 것을 본 페네르바체의 회장은 김태일에게 "제2의 김연경과 같은 선수"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 말을 들은 김태일은 "어깨가 무겁지만 롤드컵 무대에서도 터키 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답했다고.

Q 서머 결승전 무대를 보니까 대단하더라.
A 페네르바체 팀이 소유하고 있는 농구장에서 결승전을 치렀다. 많은 관중들 앞에서 경기하니까 정말 기분이 좋았고 조금이라도 실력을 더 보여주려고 노력한 덕에 슈퍼매시브를 3대0으로 잡아낼 수 있었다.

Q 팀에서도 엄청나게 좋아했을 것 같다.
A 페네르바체의 회장님이 현장에 직접 와서 관전했다. 우승이 확정되고 나서는 회식도 같이 했다. 터키에서 3위 안에 드는 부자라고 하는데 성함을 외우지는 못했다.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Q 회장이 어떤 이야기로 축하를 해줬나. 혹시 장기 계약 등의 제안도 했나(웃음).
A 악수하면서 내년에도 같이 뛰자고 했다. 답례로 같이 사진 찍어 달라고 했더니 포즈를 취하면서 "김태일은 제2의 김연경"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식사 자리에서는 선수로 얼마나 더 뛸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어봐서 "2~3년은 더 뛸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했더니 "선수 생활을 그만 두더라도 코치나 매니저 등으로 뛰면서 페네르바체의 발전을 위해 도와달라"고 부탁하더라.

Q 터키에서 계속할 생각이 있나.
A 터키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단순히 선수 생활만 했다면 애정이 크지 않았을텐데 플레잉 코치처럼 첫 해를 보냈고 롤드컵 진출이라는 성과도 내면서 경험을 쌓았다.


Q 4월 인터뷰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A 내가 아이디어 내는 것을 좋아한다. 패치 버전이 바뀐 것을 보면서 새로운 조합을 짜보고 선수들과 함께 연습하면서 발전시킨 경우가 꽤 있다. 피드백도 적극적으로 하고 한국에서 배운 프로 마인드를 전수하는 것도 좋아하다 보니 코치처럼 산 것 같다. 윈터와 서머를 거치면서 터키 선수들이 성장하는 것을 함께 하면서 e스포츠 지도자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Q 플레잉 코치 느낌이 난다고 했는데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A 어느날 연습 경기가 끝나고 피드백을 했는데 서포터가 엄청나게 좌절했다. 데리고 나가서 산책하면서 안되는 영어로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못한 점을 지적하는 것보다 잘하는 부분을 강조했더니 그 뒤로 플레이가 확실히 나아졌다. 예전에 롱주 게이밍에 있을 때 감독, 코치님에게 "내 꿈은 나중에 롱주 게이밍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사전 경험을 여기에서 하고 있는 것 같다.

Q 서머 시즌에 팀이 도움을 줘서 여자 친구가 터키에서 함께 생활했다고 들었다.
A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연애를 하는 것이 외부에서 보기에는 불안 요소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여자 친구에게 이를 확실히 인지시켰다. 연습하거나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연락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터키에서 윈터 시즌을 마친 뒤에 양가에 인사를 드렸고 약혼했다. 팀에 여자 친구 이야기를 했더니 서머에는 같이 터키로 넘어오라고 했고 연습실에 자리를 따로 내줬다. 여자 친구도 팀의 일원처럼 움직였다. 간식을 챙겨주기도 하고 연습실 정리를 도와주는 등 서브 매니저 역할을 했다. 팀에서는 내 여자 친구가 터키에 온 덕분에 1등을 했다는 이야기도 하더라.

Q 여자 친구와 함께 외국에서 생활해보니 좋은 점이 있나.
A 내가 팀에서 어떤 스케줄을 소화하고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를 여자 친구가 곁에서 지켜보면서 프로게이머의 생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연습 경기가 끝난 뒤에 격렬하게 피드백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자 친구가 저렇게 열심히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 생활을 이해하다 보니 내 멘탈이 터졌을 때는 먼저 와서 다독여주면서 복구시키는 역할도 해줬다. 여자 친구가 프로게이머의 세계를 아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롱주 게이밍과 프로즌, 롤드컵
김태일이 터키 리그를 정복하고 한국으로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전 소속 팀인 롱주 게이밍이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2017 서머에서 정상에 올랐다. SK텔레콤 T1이라는 세계 최고의 팀을 상대로 3대1로 승리한 롱주는 창단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롱주 게이밍의 시작을 함께 했던 김태일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Q 롱주 게이밍 이야기가 나왔으니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 왔을 때 롱주 게이밍의 우승 장면을 객석에서 봤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A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팀을 챔피언스에 남겨 뒀기 때문에 우승이라는 결실이 맺어질 수 있었다'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인크레더블 미라클 시절부터 따지면 롱주 게이밍은 몇 번이나 챌린저스로 내려갈 위기가 있었다. 그 때 떨어졌다면 지금의 상황은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챔피언스 무대에 남을 수 있도록 위기를 극복한 것이 내가 롱주 게이밍의 우승에 기여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Q 재미있는 사실도 있다. 김태일은 물론, '플레임' 이호종, '이그나' 이동근 등 초창기 롱주 게이밍(정확하게는 인크레더블 미라클) 멤버들이 속속 롤드컵 진출을 확정짓고 있다.
A 이호종의 임모털스, 이동근의 미스피츠가 북미와 유럽에서 티켓을 손에 넣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크래시' 이동우도 중국에서 1부 리그로 올라갔고 '퓨리' 이진용의 쑤닝 게이밍도 중국에서 꽤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롱주 게이밍 멤버들과는 계속 연락하면서 지낸다. 강동훈 감독님과 최승민 코치님이 선수를 보는 눈은 확실히 있다.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을 모았지만 한 자리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고 왜 안 됐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기는 한다. 이번에 중국에서 열리는 롤드컵에서 함께 기량을 겨룰 기회가 생긴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Q 롤드컵에서 페네르바체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가.
A 우리 팀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잠재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생각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터키 리그를 우승하고 롤드컵에 진출했다는 것만으로 팀에서는 올해 성과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벌써 축제 분위기를 내고 있지만 선수로서 내 목표는 롤드컵에서 우리의 경쟁력을 테스트해보고 높은 단계로 가고 싶은 욕심도 난다.

Q 국제 경쟁력을 테스트해본 적이 있나.
A 리프트 라이벌스에서 러시아 팀들과 대결하면서 플레이 인 스테이지를 통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조금 했다. 그 대회에는 작년에 롤드컵에서 8강에 깜짝 진출했던 팀도 있었기에 실력 테스트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팀이 무실 세트 우승을 차지했다. 터키 리그 팀들이 다들 좋은 성과를 냈기에 리그 경쟁력을 입증했다고 본다. 그리고 유럽 챔피언십 시리즈 팀들이 우리 팀과 연습 경기 요청을 할 때가 있는데 꽤나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플레이 인 스테이지를 통과하고 16강에 오른다면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Q 롤드컵 준비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A 이 인터뷰를 마친 뒤에는 한국에서 솔로 랭크를 하면서 컨디션을 끌어 올릴 계획이다. 페네르바체 선수들은 9월7일 한국에 들어오는데 그 때부터는 팀 연습을 주로 하기로 했다. 한국 e스포츠 협회에서 부트 캠프(전지 훈련)을 도와주겠다고 하셔서 중국으로 입국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훈련을 소화할 예정이다.

글=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사진=박운성 기자(photo@dailyesports.com)

*오타 수정했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