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준우승의 전설' 어윤수 "2018년 마지막 불꽃 태운다"

2017-12-12 00:13

여기 준우승 기록만으로 이미 홍진호를 넘어선 선수가 있습니다. 2등도 주목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 홍진호의 업적이라면 이 선수는 준우승 기록에서 다른 선수들이 범접할 수 없는 횟수를 기록하며 새로운 '준우승의 전설'로 떠올랐습니다.

이쯤 되면 누구인지 다들 짐작하셨겠죠? 얼마 전 정복하지 못했던 블리즈컨까지 '준우승' 기록을 찍고 돌아온 어윤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준우승 상금만으로 이미 웬만한 우승자들의 상금을 훌쩍 뛰어 넘은 어윤수는 현존하는 스타크래프트2 선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이슈를 몰고 다니는 선수임에는 분명합니다.

항상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까지도 즐겁게 만들어 주는 어윤수. 준우승을 한다 해도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긍정적인 마인드 덕분에 그는 아직도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닐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제는 모든 것에 해탈해 '부처'라는 별명까지 새롭게 얻은 어윤수. 스타크래프트2 국내 시장이 침체됐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어윤수를 만나 앞으로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가장 아쉬운 준우승
준우승을 거둔 선수가 결과에 만족한다고 하면 누구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한 번만 이기면 돈과 명예를 모두 거머쥘 수 있는 상황에서 한 번의 패배로 준우승에 머문 선수는 세상 어떤 사람보다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죠.

어윤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사람들에게 "다음에 우승하면 된다"고 말하며 애써 웃음지었지만 가슴 깊숙이 묻어 놓은 아쉬움까지 모두 달래지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준우승이 그에게는 아쉬움이고 아픈 손가락입니다.

모든 준우승이 아쉽겠지만 어윤수에게도 유독 기억에 남을 정도로 아픈 준우승이 있습니다. 바로 이번 블리즈컨 준우승입니다. 이병렬과 붙은 결승전에서 어윤수는 2대4로 패해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사실 블리즈컨에 가기 전에는 결승만 가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준우승만 해도 예전 블리즈컨 우승 상금인 1억 정도를 받을 수 있기도 했고 무조건 우승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욕심 때문에 경기가 잘 안 풀리더라고요. 그래서 마음 속으로 결승만 가자고 다짐했죠.

그런데 막상 결승에 가니 준우승과 우승자가 가져가는 명예와 상금의 차이가 크더라고요. 게다가 평소 자신 있어 하는 저그전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승이 가능할 것 같았어요. 승리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인지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블리즈컨이라는 큰 대회에서 또다시 준우승에 머문 어윤수. 준우승이라는 결과에도 좌절하지 않았던 어윤수는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후유증이 상당히 오래갔다고 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컸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겠죠.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갑자기 슬픔이 밀려 오기도 하고 마음을 진정시켰다가도 갑자기 아쉬움이 불쑥 찾아 오더라고요. 예전에는 이 기간이 길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유독 그 기간이 기네요. 이길 수 있었고 자신도 있었는데 무엇을 잘못한 건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아직도 머리 속에 맴돌아요."

◆꾸준함의 비결...승부욕과 노력
준우승 기록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꾸준함입니다. 2014년 이후 그는 꾸준하게 대회에서 결승전에 이름을 올리며 최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2 게임 특성상 절대 강자가 없는 상황에서 무려 6번의 GSL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기록입니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독한 것과 전혀 거리가 멀 것만 같은 어윤수. 하지만 그가 이같이 좋은 기록을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 '독한 승부욕' 덕분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활약에 자극 받은 덕분에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누군가의 활약이 저에게는 자극제가 되요. 특히 저그가 우승하거나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보면 더욱 자극을 받죠. 저 선수도 할 수 있는데 나라고 못할 것 없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승부욕이 강하다 해도 노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겠죠. 어윤수는 당당하게 "스타크래프트2에서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가 있다면 그 중 한 명은 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철저하게 노력형이에요. 사실 GSL 2017에서 두 번의 준우승을 기록하며 힘이 많이 빠져 있었거든요. 하지만 좌절하는데 오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곧바로 블리즈컨 준비에 돌입했어요.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았죠.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결승전에 올라갈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만약 두 번의 준우승 후 좌절의 늪에만 빠져 있었다면 다시 블리즈컨 결승에 올라가기는 힘들지 않았겠어요?"

◆2018년, 마지막 불꽃을 태우다
올해로 26세, 내년이면 이제 어윤수는 27살이 됩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선수들은 27세 고비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항상 잘하던 선수들도 27세부터 한계를 보여줬죠. 그래서인지 어윤수는 내년이 괜히 두렵고 위축된다고 고백했습니다.

"비록 우승 경험은 많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결승전도 많이 갔고 꾸준한 성적을 냈다고 자부하는데 내년에 초라한 모습을 보이면 어떻게 하나 두렵고 떨려요. 마지막일 수도 있기에 정말 잘하고 싶거든요."

그의 입에서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현실적으로 어윤수는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 생활은 2018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군대 문제 등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눈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지만 2018년은 진짜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간절함이 더한 것 같아요. 마지막 불꽃을 태워서 2018년을 2017년보다 더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슬픕니다. 하지만 어윤수에게 마지막은 단순히 슬픔이라기 보다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와 각오의 단어입니다. 2018년 지금보다 더 노력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마지막 불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팬들의 도움이 정말 컸어요. 사실 팀이 해체된 뒤 막막한 마음에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도 했는데 팬들의 응원 덕에 다시 마우스를 잡고 지금의 위치를 지킬 수 있게 됐죠. 개인방송을 통해 만나는 팬들은 삶의 활력이자 제가 게이머를 계속하는 이유기도 해요. 항상 감사 드리고 있어요."

팀을 나오게 된 후 팬들의 사랑을 더욱 체감하고 있다는 어윤수.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고 밝힌 2018년 그는 팬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준우승의 전설'에서 'e스포츠의 전설'로 거듭나겠다는 어윤수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바라봅니다.


글=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사진=박운성 기자 (phot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