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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습관적인 사과는 하지 말아야

이시우 기자

2018-05-12 00:57

[기자석] 습관적인 사과는 하지 말아야
"죄송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프로게이머들의 SNS를 보면 자주 볼 수 있는 말이다. SNS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프로게이머들은 경기에서 패하면 위처럼 팬들에게 사과의 말을 남긴다. 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다.

대부분의 종목에서 보이는 모습이지만 특히 오버워치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에게서 더욱 자주 목격된다. 미국 현지에서 진행되는 대회이니만큼 영어권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트위터 활동을 장려하는 분위기지만 어째 시간이 흐를수록 사과 도구로 전락한 느낌이다.

프로게이머는 남들과 경쟁하는 직업이다.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다. 지는 것 또한 프로게이머란 직업의 업무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프로들끼리 경쟁하는 공간에서 패배는 늘 있는 일이다. 프로 무대에서 질 때마다 자책하고 사과하는 것은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사과하는 선수들의 경기를 돌이켜보면 불성실하거나 대충 경기를 치렀다는 느낌은 거의 받지 못한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졌다면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다. 팬들도 승자와 패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누가 열심히 했는지, 누가 태업을 했는지 팬들도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최근 팬들의 경기를 보는 눈높이는 전반적으로 향상됐다. 물론 평균 연령 20대 초반의 프로게이머가 또래에 비해 많은 급여를 받고 큰 인기를 누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로게이머란 직업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사과가 쓸데없이 잦아지면 무게감이 떨어진다. 경기에서 패할 때마다 사과한다면 나중에는 그것이 진심인지 그저 습관처럼 하는 말인지 헷갈릴 수 있다. 진짜 사과를 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도 당사자의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할 수 있다.

선수들의 자책하는 심리는 소속팀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팀의 패배가 곧 자신의 패배고, 패배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1대1이 아닌 팀플레이 경기에서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도 졌다면 그것은 선수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직원은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가 경영난에 빠진다면 그것은 회사의 책임이지 직원 개인의 책임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팀이 제 아무리 연패를 하더라도 선수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면 다음 시즌에는 더 좋은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프로 스포츠에서 흔하게 있는 일이다. 팀의 성적이 선수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팀이 패했다고 자책하기만 해선 안 되는 이유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새로운 종목에서 프로게이머들이 배출되다보니 이를 조언해줄만한 선배 게이머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때로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거나 부진한 모습을 보여 패인으로 꼽히는 일도 있겠지만, 매번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팬이나 관계자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경기에서 졌다고 패배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거나 자책하는 것이 결코 습관이 돼서는 안 된다. 자책하는 것이 습관화되면 정신적 스트레스도 커지게 마련이다. 이 스트레스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선수생활에 지장이 생기고, 선수로서의 수명이 짧아질 수도 있다. 선수 스스로도 노력해야 하지만 팀 차원에서도 이를 도와야 한다.

한국 프로게이머들이 지독하게 연습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좋지만 그로부터 시작되는 역효과는 경계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신의 프로생활을 계획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프로게이머가 조심해야할 것은 손목 부상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상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사과의 습관화가 위험한 이유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

이시우 기자

si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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