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뱅' 어머니 "나눔을 아는 프로게이머로 성장하길"

2019-09-14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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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즐겁게 보내고 계십니까. 고향을 오가는 길이 막히고 짜증날 수도 있지만 보고 싶은 얼굴들, 그리워했던 사람들을 보셨다는 만족감이 세상을 환하게 밝혔던 보름달보다 크길 바랍니다.

데일리e스포츠는 추석을 맞아 색다른 인터뷰를 해봤습니다. 그동안 프로게이머들에 대한 인터뷰를 많이 전해드렸는데요. 이번에는 그들의 부모님을 찾아뵀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십 시리즈(이하 LCS) 팀인 100 씨브즈에서 원거리 딜러로 활약하고 있는 '뱅' 배준식의 어머니인 박미숙 씨를 만났습니다.

나진 실드에서 데뷔한 배준식은 SK텔레콤 T1의 주전 원거리 딜러로 활약하면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2회 우승과 1회 준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올해 북미 팀인 100 씨브즈로 이적한 배준식은 서머 막판 팀이 상승세를 타는데 기여했죠. 아쉽게도 포스트 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LCS 무대에 적응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프로게이머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마음 한 켠에는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자리했습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힘들었다는 선수들도 있고 반대로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는 선수들도 있었는데요. 추석 특집 인터뷰이로 선수의 부모님을 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배준식의 어머니 박미숙 씨와는 10일 신논현역 근처에서 만났습니다. 여름 휴가를 늦게 가야 하는 사정이 생겼고 당일 새벽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와 곧바로 서울로 오셨다고 하네요. 강원도 홍천까지 가야 하지만 아들에 대한 인터뷰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서울에 들러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가기로 했답니다.

배준식을 세계적인 프로게이머로 키운 어머니의 노하우를 직접 들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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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식의 가족들(사진=박미숙 씨 제공).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다

배준식은 네 살 많은 형이 있습니다. 남자 형제들은 형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우는데요. 형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세상 물정을 빨리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답니다. 회사원이었던 아버지는 일찌감치 IT 기기들을 접했고 집에 PC와 게임기를 사놓으셨다네요. 그 덕분에 배준식은 어린 시절부터 게임에 대한 거부감 없이 성장했습니다.

배준식의 어머니는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다른 가정보다 상대적으로 적었기에 시간이 날 때면 무엇이든 함께 하려 했다"라면서 "울릉도, 제주도 등 국내 여행 뿐만 아니라 금강산 관광이 허락됐을 때에는 거기도 네 식구가 같이 갔고 집에서 짬이 나면 아빠와 아들들이 같이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등 여유가 생길 때마다 온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라고 떠올렸습니다.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박미숙 씨는 아이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줬다고 합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두라고 했고 선택한 것을 직접 할 수 있도록 열어 뒀습니다. 부모님은 그들이 선택한 이유를 듣고 조언하면서도 존중해줬답니다.

고등학교 1학년, 17세가 된 배준식은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합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지요. 어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공부도 곧잘 하고 리더십도 있어서 학급에서 중요한 일을 맡으면서 활달하게 학교를 잘 다니던 둘째 아들이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하니까 놀랄 수밖에 없죠.

배준식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듣고 실제로 리그 오브 레전드 안에서 10위 안에 드는 배준식의 게임 성적을 본 뒤 남편과 의논한 끝에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1년 동안 시켜 보고 지원해주자"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배준식은 프로의 세계에 입문했습니다. 부모님의 동의와 지원을 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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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울다

배준식이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한 2013년은 박미숙 씨에게는 이별의 시기였습니다. 배준식의 형이 대학에 가면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고 작은 아들인 배준식마저 프로게이머 활동을 위해 서울로 떠났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던 아이들이 모두 자기 길을 찾겠다고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초봄에 큰 아들을 학교 근처로 보내놓고 돌아오는 길에 펑펑 울었는데 준식이까지 자기 길을 가겠다면서 서울로 가니까 휑하더라고요."

두 아들을 집에서 내보냈지만 마음은 둘째에게 더 쓰였습니다. 큰 아들이야 대학이라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걷는 길을 가고 있었지만 막내는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어린 나이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둘째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 오기를 기다렸습니다만 쉽지 않다는 이야기만 전해졌습니다. kt 롤스터에 연습생 시험을 봤던 배준식은 얼마 되지 않아 팀을 나왔고 나진 실드에 입단했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또 나왔습니다.

"나진 팀에서 나올 때 용산에서 봤는데 준식이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고요. 진작에 전화를 했어야 하는데 어머니가 걱정하실까봐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그런 걱정을 해야 하는 아들이 너무나 불쌍했고 헤어지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펑펑 울었어요. 자식 가진 부모들 마음은 똑같을 거에요. 아이들이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는데 세상 일이라는 게 부모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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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식 가족 사진(사진=박미숙 씨 제공).


◆나눔을 전하다

2014년 배준식은 SK텔레콤 T1 S의 일원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최고의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대회에 나오면서 가능성을 보여줬고 2015년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에 단일팀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SK텔레콤 T1 소속으로 스프링과 서머를 연달아 우승한 뒤 롤드컵에도 출전, 소환사의 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2016년에도 한국 대표로 롤드컵에 나선 배준식은 '페이커' 이상혁, '울프' 이재완 등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고 그 다음 해에도 결승까지 진출해 준우승을 이뤄냈습니다.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선수가 된 배준식에게 박미숙 씨는 새로운 과제를 내줍니다. 바로 나눔입니다.

"LCK 우승, 롤드컵 연속 우승 등 많은 것을 이뤄냈는데 그 성과가 아들 혼자 이룬 것은 아니잖아요. 팀 관계자들의 도움이 있었고 코칭 스태프도 함께 했고 동료 선수들도 같이 고생했죠. 그 바탕에는 팬들의 관심과 애정도 깔려 있고요.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 결과들을 사회 구성원들과 나누는 일이 필요하는 생각이 들어서 비시즌 동안에 기부나 봉사 활동을 하자고 했어요."

배준식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어머니의 직업은 헤어 디자이너입니다. 홍천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는 박미숙 씨는 틈틈이 지역 사회를 위해 재능 기부를 하고 있었죠. 사정이 어려운 분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직접 찾아 다니면서 1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고 배준식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함께 다녔습니다. 어머니가 모범을 보여준 덕에 봉사에 익숙했던 배준식은 흔쾌히 동의했죠.

"연탄 나누기부터 시작했을 거에요. 5,000 장을 10 가구에 전하는 일이었는데 단순히 사드리는 것을 넘어 직접 나르면서 마음을 전하자고 했죠. 그 뒤로는 아들이 의견을 묻더라고요. 어려우신 분들을 위해 내가 할 것이 없냐고."

100 씨브즈에 입단하기 전 겨울에 여유가 있었던 배준식은 고향인 강원도 홍천을 위해 여러 봉사 활동을 했고 군수, 도지사 등으로부터 상장도 많이 받았습니다.

박미숙 씨는 "어린 나이에 큰 돈을 벌다 보면 자기 생각만 하게 되는데 봉사, 기부 등을 하다 보면 주위로 시선을 돌리는 기회를 갖게 되잖아요. 이제는 자발적으로 지역 사회에 필요한 것이 없냐고 찾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요"라고 전했다.

◆도전을 응원하다

배준식은 2019년 LCS팀인 100 씨브즈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한국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로 꼽히는 SK텔레콤 T1이라는 둥지를 떠나려고 할 때 어머니는 아들의 의견을 존중했습니다. 한국이 세계 최강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익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면 아들에게 더 큰 공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말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프로게이머로 많은 것을 이뤘지만 배준식이라는 사람의 미래는 아직 꽃도 피우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훌륭한 선수들, 코칭 스태프, 사무국을 떠나 도전하겠다고 나서는 아들을 전적으로 믿고 응원했죠."

올해 스프링에서 배준식의 100 씨브즈는 LCS 최하위에 머물렀습니다. 아들에게 비판,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알고 있었던 어머니는 딱히 해준 말이 없었습니다. 개구리가 더 멀리 뛰려면 움츠려야만 하고 인고의 시간을 이겨내고 나면 아들이 더욱 성장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LCS 서머 중반에 준식이가 아카데미팀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에도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게임을 잘 모르는 엄마가 나서서 '왜 그러니', '팀에 문제가 있니'라고 이야기를 해봤자 이역만리에 있는 아들보다 더 힘들고 속이 상할까요. 힘내라고 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는데 하루 만에 1군으로 복귀하더니 성적을 내더라고요. 물론 포스트 시즌에 가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아들은 물론, 팀이 힘든 시간을 견뎌 내고 성장한 것이 큰 성과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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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셋이 잘 어울리는 어린 시절 배준식(사진=박미숙 씨 제공).


◆믿고 기다려주자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배준식에게 박미숙 씨가 강조하는 덕목은 건강입니다. 꾸준하게 운동하고 자신을 관리해야만 좋아하는 게임을, e스포츠 선수를 더 오래, 더 많이,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건강을 지키라는 잔소리는 꾸준히 합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긷든다는 말을 많이 해요. 몸이 무너지면 그 사람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삶도 다 무너져요. 우승컵, 명예, 사랑, 돈 모두 건강을 지켜낸 뒤에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해요."

어떤 아들이 되기를 원하냐고 물었더니 "프로게이머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으로 길을 닦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람이 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동업자이지만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난무하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삼는 것이 모든 업계의 생리입니다. 그렇기에 배준식의 어머니는 더더욱 아들이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함께하고 서로 나누기를 바랍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전세계적으로 리그가 열리기에 더더욱 경쟁이 심하잖아요. 그래서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홍천에 준식이만을 위한 스트리밍 공간을 만들어준 것도 비시즌에 친한 사람들끼리 편하게 놀다 가라는 뜻을 담은 것이었거든요. 놀러왔던 허승훈, 한왕호 등을 위해서는 나무도 심어줬어요. 한 사람이 열 걸음을 가는 것보다 열 사람이 한 걸음을 가는 것이 낫다는 말처럼 같이 오래 가라고요."

전세계 리그 오브 레전드 팬들에게 'Bang'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지만 박미숙 씨에게 배준식은 어리디 어린 둘째 아들입니다. 아이들이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해줄 만한 조언이 있냐고 물었더니 1분 가량 고민하던 박미숙 씨는 "믿어주는 일보다 더 큰 지원이 필요할까요"라고 답했습니다.

아이가 그 직업을 택하겠다고 나섰을 때 가장 많이 고민한 주체는 아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입니다. 단순히 부러움에, 멋져 보여서 프로게이머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게임 실력을 갖추고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겨낼 자신이 있기에 도전장을 던지는 것이라고 박미숙 씨는 생각합니다.

"아이가 선택했을 때 믿고 기다려주고 바라봐주는 것이 부모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마음껏 도전하하다 지쳐 쓰러져도 부모라는 안식처가 있다고 생각해야 또 다시 부딪힐 힘을 얻을 수 있어요."

배준식이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어머니 박미숙 씨의 신뢰 어린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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