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릴레이 인터뷰]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 유영혁의 의미있는 도전

2019-10-0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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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라이더 리그의 ‘황제’가 문호준이라면 ‘터줏대감’이라는 수식어는 이 선수에게 양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호준이 잠시 다른 게임으로 외도하는 동안에도 카트라이더 리그를 묵묵하게 지켜내면서 결국 ‘신황제’라는 수식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카트라이더 리그가 힘을 때에도 원톱 체제로 리그를 끌고 간 이 선수 덕분에 카트라이더 리그가 지금의 영광을 누리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힘들 때에도 이 선수는 카트라이더 리그에서 최고의 선수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지난 시즌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을, 카트라이더 리그 자체인 이 선수는 바로 아프리카 프릭스 유영혁입니다. 12년 동안 묵묵하게 카트라이더 리그에서 오직 카트라이더 선수로만 외길을 걸은 고집쟁이 유영혁은 이번 시즌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편안한 길을 놔두고 힘든 여정을 선택한 유영혁. 과연 그에게는 어떤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요? 영원한 라이벌이자 동반자였던 문호준이 릴레이 인터뷰 세 번째 주자로 지목한 아프리카 프릭스 유영혁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자신을 찾기 위해 선택한 문호준과의 결별
지난 시즌 단연 화제는 문호준과 유영혁이 한 팀을 이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사실 두 선수는 오랫동안 라이벌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한 팀을 이룰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시작 전에 우려가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이벌 구도가 사라지면서 리그를 보는 재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의견과 너무 강한 팀이 되지 않겠냐는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도 다수 있었죠.

그러나 오히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팀으로는 잘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유영혁 개인에게는 독이 됐습니다. 아무래도 스포트라이트가 문호준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고 유영혁은 지금까지 한번도 느끼지 못한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감마저 하락하며 개인리그 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죠. 지난 시즌 유영혁의 이름은 그렇게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유영혁 입장에서는 힘듦과 편안함이 동시에 공존했습니다.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져간다는 것은 괴로웠지만 에이스로서의 중압감을 떨칠 수 있었고 시즌 막판에는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다는 소식까지 전해 들으면서 편하게 프로게이머 생활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사실 나이도 많고 내가 언제까지 프로게이머를 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문)호준이의 이름을 빌어 남은 게이머 생활을 편하게 할 수도 있었어요. 굉장히 끌리는 조건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한 유영혁이 누군가의 이름 뒤에서 편하게 생활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만약 제가 자존감이 조금이라도 낮았다면 (문)호준이 팀에 그대로 있었을 것 같아요."

유영혁은 시즌 내내 고민했고 결국 팀을 나오기로 결정했습니다. 후원해준다는 기업도 없었고 같이 하겠다는 동료도 다 채워지지 않은 불확실한 상황이었지만 유영혁은 리그에서 자신의 자리를 다시 찾기 위해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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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잘한 선택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프로게이머 상황을 마무리 하고 싶지 않았어요. 카트라이더 리그가 가장 힘들 때도 묵묵하게 리그를 지켰던 저인데 이대로 흔적 없이 팬들에게 잊혀지기는 싫었던 것 같아요. 적어도 나중에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릴레이 인터뷰에서 유영혁을 지목했던 문호준은 마치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할 법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문호준은 "(유)영혁이형, 나를 버리고 가서 행복해?"라고 질문했고 이 이야기를 전하자 유영혁은 박장대소 했습니다.

"저 말을 진짜 자주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들으니 (문)호준이가 정말 서운했나 생각이 들었어요. 알게 모르게 제가 (문)호준이에게 힘이 됐었나 싶기도 하고(웃음). 마음이 복잡해요.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그렇다고 아니라고 말하기에도 애매하죠. 다만 행복하기 위해 나왔으니 행복해져야죠.

그런데 이게 상황이 애매해요. 제가 나간 건지 (문)호준이가 나간 건지 모르겠어요. 지난 시즌이 아프리카 플레임이었잖아요. 아직 아프리카에 남아있는 건 저랑 (강)석인이형이고요(웃음). 역으로 물어보고 싶네요. (문)호준아, 날 떠나 행복하니?"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영혁. 문호준과 라이벌일 때 리그에든 스스로에게든 시너지 효과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영혁은 그렇게 이번 시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까지 ‘빅3’냐고요? 끝날 때까지요!"
문호준과 유영혁, 전대웅까지 ‘빅3’라 불리는 세 명의 프로게이머들은 카트라이더 리그의 ‘고인물’이라 불립니다. 세 선수 모두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죠. 이제 그만 해 먹(?)으라는 후배들의 외침에도 세 선수는 아직도 카트라이더 리그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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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최근 박인수가 급부상 하면서 ‘빅3’ 체제가 ‘빅4’로 전환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호준과 유영혁, 전대웅은 이름만으로 팬들에게 기대감을 주는 선수들임에는 분명합니다. 유영혁 역시 그래서인지 ‘빅3’가 못할 때가 가장 속상하다고 합니다.

"물론 제가 못할 때가 가장 속상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문)호준이나 (전)대웅이형이 못할 때 너무 속상해요. 개막전에서 (전)대웅이형네 팀과 붙었을 때 이겼지만 속상했어요. 1년이나 쉬고 돌아와서인지 대웅이형이 갈피를 못잡더라고요. 치열한 접전 끝에 이겼으면 기분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들어라고요.

그런데 글로벌 슈퍼매치에서 감을 잡기 시작하더니 다음 경기에서 완벽한 주행을 보여주는걸 보면서 괜히 뿌듯했어요. 만약 지금의 긱스타와 우리 팀이 붙는다면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역시 ‘빅3’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대회장에서는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적이지만 리그 전체를 봤을 때는 동반자와 같은 세 명의 선수들. 문호준과 유영혁, 전대웅 모두 서로가 있었기에 오랜 시간 동안 게이머 생활을 하며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초심으로 돌아가자
유영혁은 최근 급속도로 피지컬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선수들이 기발한 생각과 작전을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보며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깊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어릴수록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아요(웃음). 제가 절대적인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프로게이머로서 상대적인 나이가 많다 보니 패턴화 된 플레이가 몸에 배었고 참신한 전략이 생각이 잘 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거든요.

지금은 우리가 더 배워야 하는 상황인 것 같아요. 2018년 까지는 팀워크를 맞춰야 하거나 전략을 새롭게 구상하지 않아도 개인기만으로도 충분했는데 2019년에는 그런 부분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더 많이 배워야죠."

사실 유영혁은 그동안 연륜과 경험만으로도 준우승 이상의 성적이 꾸준히 나왔기에 스스로의 방법이 옳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19년 들어서면서 유영혁은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하게 깨닫고 팀을 책임지고 있는 현재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카트라이더 리그에 처음 출전했을 때를 기억해요. 상위권으로 올라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었거든요. 지금 그때만큼의 노력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2019년 새로운 유영혁으로 환골탈태하는 날로 잡아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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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는 누구의 옆자리가 아니다
최근 문호준의 라이벌은 유영혁이 아닌 박인수입니다. 다들 신 라이벌이라고 부르며 박인수와 문호준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 유영혁이 잃은 것 중 문호준의 라이벌 호칭을 잃은 것은 가장 큰 상실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영혁은 역시 달랐습니다. 문호준의 라이벌 자리를 박인수에게 빼앗긴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유영혁은 12년 동안 한 리그만 바라봤던 선수가 가지는, 자존심과 자신감을 듬뿍 담아 답변했습니다.

"처음부터 누구의 옆자리가 목표인 적도 없고 그 부분이 제 전부도 아니었어요. 항상 우승만을 꿈꿨고 최고의 자리를 노리고 연습하고 준비했죠. 문호준의 라이벌 자리를 되찾는 적이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유영혁이 다시 최고가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싸움일 뿐이죠."

뒤통수를 때리는, 정말 멋진 답변이었습니다. 편한 길을 놔두고 힘든 길을 선택한 유영혁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너무나 잘 이해되는 답변이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게이머가 아닌 자신을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을 선택한 유영혁의 모습이 멋있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시즌 당장 우승하겠다는 거창한 목표 보다는 제 기량을 끌어 올리고 유영혁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처음 프로게이머를 시작했을 때의 그 마음가짐으로 임할게요.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팀도 다같이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거든요. 아프리카 프릭스, 많이 사랑해 주세요!"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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