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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손자병법] 48. 첫판 지자 선동열을 마무리로 낸 김응용의 병무상세(兵無常勢)

이신재 기자

2020-11-24 08:28

-병무상세(兵無常勢) 수무상형(水無常形). 군은 정해진 형세가 없고 물도 같은 모양이 아니다.손자 허실편(虛實篇).

선동열이 졌다. 그것도 1회 선두타자 홈런을 포함해서 4점이나 줬으니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었다. 필승카드를 내고도 0-4의 완패 장면들을 지켜 본 김응용 감독은 심기가 말이 아니었다. 첫 판을 속절없이 줬으니 이제 어쩌지.

[프로야구 손자병법] 48. 첫판 지자 선동열을 마무리로 낸 김응용의 병무상세(兵無常勢)


선동열이라 절반은 지고 시작했다. 그런데 완승했다. 2, 3차전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선이 다시 나올 4차전을 진다해도 그가 또 던질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밖에 없고 그러면 우승은 따논 당상이다. 김영덕 감독은 만면에 웃음 꽃을 피우며 선동열 완파의 기쁨을 만끽했다.

1989년 해태 타이거즈-빙그레 이글스의 한국시리즈. 이글스가 정규시즌에서 1위를 했지만 시리즈 우승은 만만치 않았다. 이글스는 감독부터 선수까지 유난히 ‘선동열 무섬증’을 많이 탔다. 5년 연속 방어율 1위(1.17)인데 이글스엔 더 강해 김영덕 감독은 ‘이길 수 없는 선수’로 치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선동열을 상대로 뜻밖으로 1차전을 잡았다.

이글스는 그 한판의 승리로 이미 시리즈를 잡은 듯 한 분위기였다. 김영덕 감독은 선동열만 아니면 타이거즈는 별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2차전도 1회 4득점,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득점과 연결되는 결정적인 실책으로 4-6으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1승1패지만 승리의 무게는 달랐다. 여전히 승산은 이글스에 있었다.

3차전. 타이거즈 문희수의 공이 좋았다. 7이닝까지 점수를 올리지 못하고 끌려 다녔다. 하지만 다이나마이트 타선이 계속 농락당할 리는 없었다. 8회 발 빠른 선두 타자 이중화가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됐다 싶었다. 2점은 충분히 뒤집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선동열이 올라오고 있었다. 불펜피칭을 할 때부터 조금 불안했지만 4차전을 위한 몸 풀기인줄 알았지 등판할 줄은 몰랐다.

1차전 패배 후 김응용 감독은 장고 끝에 결론을 내렸다. 선동열이 선발로 나설 수 있는 기회는 많아야 두 번. 7차전에 갈 경우가 그렇고 6차전 이전에 끝나면 한 번 뿐이었다. 그래서 ‘선동열 선발 카드’를 버리고 ‘세이브 카드’를 준비했다.

선동열은 그 해 선발로 21승을 올렸지만 급할 때 가끔 중간 마운드에 올라 8세이브를 거두었다.

이글스의 덕아웃이 술렁거렸다. 황망중에도 김영덕 감독은 김상국을 대타로 냈다. 그리고 치고 달리기 작전을 걸었다. 실패였다. 다행히 9회초 무사 2,3루의 더 좋은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중심타선이 삼진, 땅볼, 플라이로 맥없이 물러났다.

김영덕 감독의 고민이 다시 늘었다. 선동열 때문에 1승 2패로 몰린 터에 선동열이 언제 나올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언제든 위기면 뛰쳐나올 게 뻔했다. 마음을 다 잡을 수 없었다. 4차전까지 지고 나니 더욱 심란했다.

5차전 4회말, 무사 1,2루의 기회를 잡았다. 김영덕 감독은 아까부터 타이거즈 쪽 불펜을 수시로 쳐다보고 있었다. 김응용은 ‘선동열 찬스’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선동열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김영덕 감독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 1, 2루가 그냥 지나갔다. 그리고 더 이상 이글스의 득점도 없었다. 9회까지 10차례나 삼진을 먹으며 선동열에게 한국시리즈 4연패의 기록을 세우는 승리를 바쳤다.

포스트 시즌 경기는 한판에 전체의 운명이 걸려있다. 틀에 매여 좌고우면 했다간 상대의 기습전에 당하기 십상이다. 단기전은 병무상세 전략이 먹히는 기회이고 그때의 변칙은 변칙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이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이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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