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아만전사 카르고 20화

2019-07-15 11:18
테라-아만전사 카르고 20화
[데일리게임]

* * *

“세, 세상에…….”

벤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모두 합쳐 오십 명의 인원으로 레나르의 관문 바깥쪽을 철통같이 경계하는 관문경비병 중 하나인 벤은 관문의 가장 외곽에 배치되어 있었다.

조금 전 관도 멀리서 흙먼지가 피어나는 것을 발견한 벤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사냥 나간 모험가 파티가 돌아오나 보군. 응? 흙먼지를 보니 인원이 꽤나 많은데?”

이곳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벤은 흙먼지가 피어나는 모양만 봐도 구체적인 인원구성을 추측할 수 있었다.

“저 정도라면 수레 두 대에 말이 최소한 서른 필은 되는군. 수레에 묶인 말까지 합쳐서 말이야.”

그가 계산을 하는 사이 흙먼지를 일으키는 범인들이 가까이 접근해 왔다. 그런데 대열을 살피던 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실린 짐이 얼마나 무겁기에 작은 수레에 말을 저렇게 많이 매어 놓았지? 게다가 말들이 대부분 수레 뒤를 따라가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군. 보통의 경우 수레가 피워 올리는 흙먼지 때문에 수레 앞에서 달리기 마련인데.”

대열이 가까이 접근한 순간 벤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두 번째 수레에 실린 거대한 몬스터의 시체를 알아본 것이다.

“세, 세상에……. 카누바라크야! 모험가들이 아펜디아 분지의 공포 카누바라크를 사냥했어!”

비명과도 같은 부르짖음에 경비병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그게 정말이야?”

그들은 카누바라크를 잡기 위해 무수한 모험가들이 레나르를 나섰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런 무시무시한 몬스터 카누바라크가 토막 난 시체가 되어 수레에 실려 있다는 것이다.

삼삼오오 모여든 경비병들이 부러운 눈으로 수레를 쳐다보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횡재했군. 갑부들이 여럿 탄생하겠어.”

“카누바라크를 사냥하며 많이도 죽었나 보군. 수레 뒤로 묶인 말 등에 시체(?)들이 무수히 실려 있는걸.”

그들이 중얼거리는 사이 마침내 대열이 정지했다. 자욱하게 피어나는 흙먼지 사이로 명랑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두카가 기세 좋게 고함을 지른 것이다.

“이봐! 바리게이트를 좀 치워 줘. 수레가 커서 지나가지 못할 것 같거든.”

그 말에 경비병들이 공손히 대답했다. 카누바라크를 사냥할 만한 파티라면 그들로서는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거물들이다. 보나마나 명성이 자자한 파티가 틀림없을 터였다.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깨를 으쓱한 두카가 손가락을 뻗어 수레 뒤를 가리켰다.

“그리고 말 등에 묶인 녀석들 좀 처리해 줘. 전리품을 노리고 공격해 온 도적들이야. 전직 모험가들인데 카누바라크를 보고 무모하게 달려들더군. 달려드는 족족 모조리 때려잡았지.”

그 말에 경비병들이 입을 딱 벌렸다. 카누바라크와 싸우는 과정에서 전사한 시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일확천금을 노린 도적떼였다니…….

경비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말 등에 실린 도적떼를 끌어내렸다. 이제 그들은 경비대의 감옥에서 죗값을 치를 때까지 갇혀 있어야 할 것이다. 경비병들의 귓전으로 두카의 유쾌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필드의 법도에 따라 도적놈들의 장비와 말은 모두 우리 것이야. 그 사실을 모두들 잘 알고 있겠지?”

“무, 물론입니다. 도적들의 장비는 모두 검거한 사람에게 귀속되는 법이지요.”

두카는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그 모습에 포르나와 세실리아가 살짝 입을 가리고 웃었다.

“두카 녀석, 신이 났군.”

초보 도적들의 압송이 끝나자 경비병들의 눈빛은 또다시 변해 있었다. 파티를 구성하는 모험가의 수는 단 네 명뿐이었다. 네 명이서 카누바라크를 잡았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경비병들이었다. 그들은 쑥덕쑥덕 귀엣말을 나눴다.

“카누바라크를 사냥하는 과정에서 동료들을 많이 잃은 것일까?”

“그러기엔 표정이 너무 밝은걸?”

두카가 기회다 싶었는지 인심을 썼다.

“말 스무 필을 끌고 가려면 힘들어. 그러니 관문을 통과하는 사례금 대신 말을 줄게. 팔아서 너희들끼리 나눠 가져. 그래도 괜찮지?”

경비병들의 눈이 커졌다. 포포리족 궁수(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활을 등에 차고 있는)의 말대로 사냥을 마친 모험가들은 수고비조로 관문 경비병들에게 얼마씩 건네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아무리 값진 몬스터를 사냥해 오더라도 경비병들에게 건네주는 것은 기껏해야 은화 몇 닢이 전부이다. 그런데 한 마리당 수십 골드씩 하는 말을 스무 필이나 건네준다는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뜻밖의 횡재를 한 경비병들이 깍듯이 부동자세를 취했다. 엄청난 불로소득을 거둔 경비병들은 바리게이트를 치워 주는 것도 모자라 바닥을 평평하게 정리해 주는 성의를 보였다. 두카가 의기양양하게 수레를 몰아 관문 안으로 들어왔다.

사실 그것은 이미 이곳으로 오며 동료들과 상의해 둔 부분이었다. 그들 네 명이 노획한 말 스무 마리를 몰고 가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관문 통과 사례금 대신 거추장스러운 말을 넘기기로 이미 합의가 되어 있었다.

관문 안쪽에는 내곽 경비병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외곽의 동료들이 횡재(?)한 모습을 본 경비병들이 이때다 하고 나섰다. 열 명 정도의 경비병들이 자청해서 호위를 해 주겠다고 나섰다.

“시내에는 소매치기들이 들끓습니다. 수레의 전리품을 보고 달려들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지요. 괜찮으시다면 저희들이 동행하며 지켜 드리겠습니다.”

갑부가 된 모험가들의 수발을 들어 주며 떡고물을 챙기려는 머리 좋은 경비병들이었다. 근무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걸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 그래 주면 우리야 고맙지. 수고비를 넉넉하게 줄 테니 부탁 좀 해. 보수는 충분히 기대해도 좋아.”

그 말에 경비병들의 안색이 환해졌다. 물론 눈치 빠르게 나서지 못한 경비병들은 땅을 쳤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서 카르고 일행은 경비병들의 철통같은 호위를 받으며 레나르 시내로 접어들었다.

* * *

카누바라크 사냥에 성공한 카르고 일행은 전리품을 모조리 팔아 거금을 손에 넣었다. 소득은 실로 풍성했다. 전리품 중에서 부르는 것이 값이라는 명품 무기가 수십 개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모두 스트라비가 소개해 준 장인들의 공방에서 매입해 주었다. 하나같이 명성을 널리 떨친 이름난 모험가들의 유품이라 꽤나 비싸게 가격이 매겨졌다.

오칸족 소굴에서 건진 전리품들은 귀찮아서 그냥 상인들을 불러들여 되는 대로 처분해 버렸다. 그러나 그 액수도 만만치 않았다.

백미는 카누바라크의 체액과 독샘에서 추출한 독액이었다. 이미 가치가 입증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카누바라크의 독을 경매에 붙였다. 경매장에는 그야말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카누바라크의 독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연금술사에서부터 마법 길드의 마법사들, 그리고 독을 제조하는 장인들이 서로 경쟁하듯 가격을 높여 댔고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낙찰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속성의 독은 말 그대로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카누바라크의 내장과 고기도 비싼 값에 팔려 나갔다. 약재와 별미를 즐기는 미식가들의 요리재료로 쓰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전리품을 모두 처분하자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그들의 손에 쥐어졌다. 파티는 그 돈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스트라비의 공방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카누바라크의 표피를 들고 말이다.

“정말 대단하군. 실제로 카누바라크를 사냥해 올 줄은 몰랐어.”

카누바라크의 표피를 만져 본 스트라비가 매우 만족해했다.

“정말 놀랍군. 그 어떤 몬스터의 표피에 비해서도 탄력적이면서 충격을 분산시키는 능력이 탁월해. 명품 갑옷이 탄생하겠어.”

스트라비는 즉각 갑옷 제작에 들어갔다. 카누바라크의 시체가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덩치가 큰 카르고의 전신 갑옷을 만들고도 절반 이상 남을 정도였다. 혹시라도 갑옷이 부서질 경우를 대비해 여분의 재료를 챙겨 두었지만 남은 것으로도 전신 갑옷 한 벌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스트라비가 남은 재료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것은 나에게 팔게. 정말 훌륭한 갑옷 재료야. 만약 그렇게 한다면 갑옷 제작비는 받지 않겠네. 그리고 무기 대금도 천 골드 정도 깎아 주지.”

카르고가 생각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십시오.”

스트라비의 입가로 미소가 번져 갔다.

“고맙군. 칼리아스는 쓸 만하던가?”

“쓰면 쓸수록 마음에 쏙 들더군요. 혹시라도 칼리아스가 망가질 경우 수선을 부탁드립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망가질 경우 언제든지 새로 만들어 주겠네. 자넨 충분히 내가 만든 무기를 사용할 자격이 있어.”

카누바라크 사냥을 성공시킨 탓에 카르고와 그 동료들은 레나르에 널리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카누바라크의 표피로 만든 갑옷을 입은 카르고를 보자 모험가들은 두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다른 동료들의 이름도 덩달아 알려졌다.

카르고는 갑옷과 무기 대금을 치르고 남은 돈을 공평하게 네 등분해서 나눴다. 카르고의 동료가 된 덕분에 세실리아와 포르나, 그리고 두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엄청난 부자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돈을 헛되이 쓰지 않았다. 대부분의 돈을 실력을 키우는 데 아낌없이 투자했다.

“먼저 할 것이 있어요.”

세실리아는 중급 마법 학교의 교수를 초빙해 개인교습을 받았다. 수업료를 아끼지 않고 마법실력을 증진시키는 데 매진한 것이다. 마법서적도 아낌없이 사들였다. 동료로서 카르고를 지원하려면 실력을 키우는 것이 시급했다.

포르나는 신전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그러자 신전에서는 상급 사제들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다. 포르나는 그들의 개인지도를 받아 가며 치유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했다. 값비싼 성물과 성수도 아낌없이 사들였다.

두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누바라크의 레어에서 얻은 활을 일류 공방에다 맡겨 체형에 맞게 개조하고 필수 장비를 사들이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두카는 카누바라크의 독샘에서 추출한 독액 한 병을 자신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필드에 서식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몬스터에게 작용하는 독이었으므로 화살에 바를 경우 효과를 비약적으로 강화시켜 줄 터였다. 그렇게 파티원들은 당분간 실력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만반의 준비를 모두 갖춘 다음 그들은 두 번째 사냥에 나섰다. 이번에는 팔리아 산맥의 공포로 불리는 네임드 몬스터 테르카시아가 목표였다.

그들은 준비를 충실히 한 뒤 레나르에서 제법 많이 떨어진 팔리아 산맥까지 이동했다. 그곳까지 이동하며 카르고의 파티는 가는 길에 거치적거리는 몬스터를 모조리 사냥했다. 그 과정은 세실리아, 두카, 그리고 포르나가 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운 각종 기술의 숙련도를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전투감각 역시 탁월해졌다.

파티원들은 사냥이 거듭될수록 강해졌다. 특히 세실리아의 성장이 부쩍 눈에 띄었다. 마법 학교의 교수들로부터 개인교습을 받은 다음 돈을 아끼지 않고 마법서적을 구해 연구한 데다 매일매일 강력한 몬스터를 사냥하니 실력이 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포르나와 두카 역시 세실리아보다는 못했지만 착실하게 성장해 나갔다. 물론 그들의 순탄한 사냥에는 카르고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카르고는 말 그대로 철벽이었다. 그야말로 철탑처럼 버티고 서서 동료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었고 몬스터에게 실로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쳐서 몬스터의 혼을 쏙 빼 놓는 것은 카르고가 가진 최대의 장기였다.

세실리아와 두카는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고 포르나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치유 주문을 외웠다. 그들의 합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몬스터를 사냥하며 팔리아 산맥에 도착한 카르고의 파티는 마침내 목표물인 네임드 몬스터 테르카시아와 대면했다.

키아아악!

고작 네 명으로 구성된 모험가 파티를 보자 테르카시아가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달려들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모험가들을 제물로 삼아 이름이 붙여진 테르카시아가 그들을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수가 적지만 카르고의 파티는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최정예 파티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선두에는 철벽의 수문장인 카르고가 버티고 있었다.

철저하게 역할분담이 된 그들의 위력적인 합공에 팔리아 산맥의 공포로 악명을 떨치던 네임드 몬스터 테르카시아는 결국 삶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성공리에 사냥을 마친 카르고의 파티는 전리품을 처분하고 그 돈을 투자해서 또다시 실력을 키웠다. 그리고 다음 사냥감을 물색했다.

김정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