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박령우 "스타2, 최연성 감독 그리고 도전"

2017-03-09 23:59

아쉬움의 크기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어떤 집단에서 무언가를 함께 잃었을 때 어떤 사람의 아쉬움이 더 큰지 가늠하는 일은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폐지와 기업팀 해체를 바라보면서 가장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는 선수를 떠올렸을 때 이 선수 이름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 봅니다. 아마도 그가 현재 최정상의 기량을 뽐내며 가장 잘나가는 선수로 등극하기 일보직전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번 결정을 가장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봐야 했던 불운의 사나이는 바로 전 SK텔레콤 T1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 박령우 입니다. 그는 지난 해 스포티비 게임즈 스타리그에서 우승과 준우승 등 최상위 성적을 유지했으며 블리즈컨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최고의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만약 팀이 계속 유지됐다면 그는 최고의 대우를 받는 선수가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쉬움이 컸지만 박령우는 좌절하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최고의 프로게이머로 인정 받기 위해 그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고 또다른 도전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입니다.

덤덤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박령우를 만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긍정과 성실의 힘"
박령우가 단계를 밟아가며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긍정과 성실입니다. 박령우는 패배에서 배울 것을 취한 뒤 곧바로 기억 저편으로 보내는 일을 잘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갈 에너지를 충전하는데 힘을 집중했습니다.

"긍정이라는 것은 ‘나는 잘 될 거야’라는 말만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에이스 결정전에서 패하거나 아쉬운 경기를 하고 난 후에는 후회도 되고 경기를 다시 곱씹어보곤 하죠. 하지만 패배에 연연하지는 않았어요. 자꾸만 생각하다 보면 과거에 파묻혀서 앞으로 나갈 수 없더라고요."

그가 말하는 긍정의 실체는 좀더 구체적이었습니다. 무작정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실패에서 배우고 좌절의 기분을 최대한 빨리 떨쳐내고 앞으로의 일에 집중하는 것.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천만배 어려운 이 일을 박령우는 계속 시도하고 시도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박령우는 2016년 최고의 한해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가 가진 긍정의 힘은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죠. 계속되는 준우승으로 지칠 수도 있었던 박령우가 결국 우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긍정의 힘이었을 것입니다.

박령우를 지금까지 있게 한 또 하나의 힘은 바로 성실함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 최연성 감독이 박령우 예찬자가 됐던 것도 바로 그런 모습 때문입니다.

◆"좋은 멘토였던 최연성 감독"
최연성 감독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박령우를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습니다. 분명히 그는 큰 선수가 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죠. 그가 큰 주목을 받기 전부터 최연성 감독은 박령우의 가능성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

최연성 감독의 발언은 예전 임요환이 선수 시절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 선수가 나타날 것이라고 최연성을 소개했던 장면을 떠오르게 만들었죠. 최연성 감독의 이야기에 관계자들은 박령우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연성 감독의 이같은 신뢰를 박령우도 알고 있었을까요? 한참을 고민하던 박령우는 수줍게 웃으면서 "감독님이 나를 예뻐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역시 경기에서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눈치가 빠른 선수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저를 많이 믿어주시는 것은 잘 알고 있었죠. 하지만 다른 관계자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하신 줄은 전혀 몰랐어요. 굉장히 자랑스럽네요. 존경하는 분이었고 멘토 역할을 잘 해주셨던 분께서 저를 그렇게 평가해 주셨다니 기분이 진짜 좋아요."

최연성 감독에 따르면 박령우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았으며 수정 사항을 바로 이행했다고 합니다. 또한 기복 없이 꾸준하게 연습에 임했고 혹독한 연습 시간도 불평하지 않고 따라주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집중했다더군요.

"실력에 대해 자신 있었는데 이상하게 성적은 잘 나오지 않아서 조급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최연성 감독님께서는 선수 시절 엄청난 우승 경력이 있으시고 우승 선수들을 코치한 경험도 많으시기 때문에 믿고 따르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게다가 성격이 완벽주의자라 꼼꼼하게 준비해주시는 감독님과 성향이 잘 맞았죠."

팀 해체가 결정된 뒤에도 박령우는 최연성 감독과 자주 연락하며 소식을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 최연성 감독이 아프리카 리그 오브 레전드 팀 감독으로 부임해 SK텔레콤 T1을 꺾은 모습도 지켜봤었다네요.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사실 리그 오브 레전드에 대해 잘 몰라서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실감을 못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좋아할 만 했어요(웃음). 감독님께서 잘 되셔서 저도 정말 기뻤어요. 헤어질 때 서로 다시 최고의 자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했거든요.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스타크래프트2는 사랑입니다"
최근 스타크래프트1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선수들이 스타크래프트1과 스타크래프트2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박령우는 단호하게 "스타크래프트1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에게 스타크래프트2는 '꿈'이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프로리그 중단과 팀 해체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조차도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스타크래프트2 이외의 것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물론 충격이었고 힘들었지만 이로 인해 다른 종목을 한다거나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서울에 집을 구한 뒤 박령우는 곧바로 연습에 돌입했습니다. 다른 일을 계획할 시간도 아까웠습니다. 상황이 바뀌었지만 스타크래프트2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박령우의 꿈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주변에서는 이 참에 군대나 일찍 가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해요. 하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거든요. 리그가 있는 한 계속 스타크래프트2 선수로 남을 생각입니다. 저희를 기억하고 사랑해 주셨던 팬들도 떠나지 말고 더 많은 관심과 사랑 주셨으면 좋겠어요. 선수들이 살아가는 힘은 팬들의 응원에서 나오거든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더 나은 곳을 위해 다시 달려가는 박령우. 앞으로 열릴 모든 스타크래프트2 대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상위권으로 올려 놓겠다는 그의 다짐이 현실이 되기를 응원합니다.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