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아만전사 카르고 10화

2019-07-1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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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물론 내가 만들었지. 그나저나 아만족 말은 정말 어렵군. 우리가 아닌 다른 종족들이 배우려면 상당히 고생하겠어.”

상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자 카르고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짙어졌다. 아무래도 통역을 통하는 것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카르고의 입장에서 모든 종족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포포리 장인을 만난 것은 천운일 수밖에 없었다.

“상당한 솜씨입니다. 겉부터 속까지 한결같은 성질의 강철로 단련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죠.”

상당한 솜씨란 말에 눈매가 급격히 휘말려 올라갔지만 이어지는 말을 들은 포포리족이 담배를 바닥에 문질러 껐다.

“뭘 좀 아는 친구로군. 그러나 상당한 솜씨라는 말은 과했어.”

“이 검을 보고 느낀 것을 말했을 뿐입니다. 담금질의 마무리에 비하면 망치질이 거칠고 불규칙적인 것을 보아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추정해 보자면 시험 삼아 만들어 본 습작 정도.”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듯 포포리족이 말을 잃었다. 잠시 후 그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스트라비라네. 자넨 누군가?”

“카르고라 불러 주십시오. 이번에 발키온 연합이 된 아만족의…….”

잠시 말을 끊은 카르고가 심호흡을 하며 말을 이었다.

“전사입니다. 아케니아 혈족에겐 유일하게 남은 전사이지요.”

스트라비의 눈빛이 다소 날카로워졌다.

“유일한 전사라. 그럴 법도 하군. 아만족이 힘만 좋지 느려 터진 허풍선이란 말을 들었는데 그게 다 헛소문이었군. 그나저나 그 사실은 어떻게 알았나? 자네 말대로 그 검은 내가 시험 삼아 만들어 본 녀석이라네. 장인 출신이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을 텐데.”

“강철의 결을 보면 알 수 있지요. 꼭 장인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운명을 함께할 친구에 대해 모른다면 전사로서의 자격이 없지요.”

눈을 가늘게 뜨고 카르고를 노려보던 스트라비가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흠…….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로군. 요새 전사 녀석들은 무기를 전투를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친구로 생각하지 않지. 자넨 꼭 고대에서나 볼 수 있는 전사 같은 소릴 하는군.”

그 말에 카르고가 대답하지 않고 싱긋 웃었다.

“그래, 아케니아의 전사여. 무기를 구하러 왔나?”

“그렇습니다. 강력한 적과의 싸움에서 친구를 잃었습니다. 남은 운명을 함께할 새로운 친구를 구하려 하는데 만나기가 정말 쉽지 않더군요.”

두런두런 이어지는 대화를 세실리아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알아들을 순 있었지만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스트라비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짙어졌다.

“그렇지. 어중이떠중이가 모여 있는 이곳에서 운명을 함께할 친구를 구하는 건 무척이나 어렵겠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서너 명의 장인들이 나와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포포리족 장인들이었다.

마음을 정한 듯 스트라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강철의 결을 느끼고 무기를 친구로 생각하는 전사라면 충분히 내가 만든 무기를 가질 자격이 있지. 자네의 무기를 만들어 주겠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장인들 사이에서 경악 어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 안 됩니다, 스트라비 님!”

“영주님이 의뢰한 검도 아직 제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스트라비의 눈이 좍 찢어졌다.

“시끄럽다. 검을 벽에 걸어 놓는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녀석들이 대관절 뭐가 급하다는 말이냐? 영주에게는 내가 직접 말하겠다. 그러니 조용히 해라.”

그 말에 장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닫았다. 도제인 그들에게 마스터인 스트라비는 감히 넘어설 수 없는 존재였다.

세실리아는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영주의 검을 의뢰받을 정도라면 평범한 장인으로 보기 힘들다. 그런 장인이 직접 만든 무기라면 말 그대로 부르는 것이 값일 터였다. 하지만 놀라움에 앞서 걱정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정도 실력을 가진 장인의 무기라면 현재 그녀의 주머니 사정으론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슬슬 자네 친구의 모양과 형태, 그리고 크기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할까?”

안으로 들어가려던 스트라비를 세실리아가 다급히 불렀다.

“자, 잠깐만요.”

“무슨 일이지?”

“가격은 얼마나 지불해야 할지……. 보시다시피 저희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서 말이에요.”

그때 카르고가 조용히 손을 내밀어 세실리아의 어깨를 잡았다.

“친구를 구하는데 돈을 논할 순 없는 법이다.”

“하, 하지만 돈이 모자랄지도 몰라서요.”

“모자란다면 나중에 갚으면 되겠지.”

그 말을 들은 스트라비가 히쭉 웃었다.

“자네 말이 마음에 드는군. 그렇지. 친구를 얻는데 돈을 논할 순 없는 법이지. 애석하지만 깎아 줄 수는 없네. 무기의 가격은 바로 장인의 자존심인 법이니까.”

고개를 돌린 스트라비가 카르고를 올려다보며 허벅지를 툭툭 쳤다.

“하지만 외상은 가능하네. 척 보니 무기 대금을 떼먹을 친구 같지는 않군.”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가를 받고 만들어 주는 건데 감사인사 따윈 필요 없네. 그럼 들어가 볼까?”

카르고가 망설임 없이 스트라비를 따라 내실로 들어갔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세실리아가 재빨리 뒤를 따랐다.

무기의 형태와 구조에 대해서는 카르고와 스트라비의 의견이 척척 들어맞았다.

“두 자루의 도끼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타원형의 블레이드를 가진 외날 도끼에다 끝에 찌르기가 가능한 창날이 달려 있어야 합니다.”

“흠…… 핼버드랑 비슷한 모양이로군. 갈고리 따윈 필요 없겠지?”

“네. 뒷부분은 평평하게 처리해 주십시오. 때에 따라서는 둔기로 사용할 수 있게 말입니다.”

“길이와 무게는 얼마 정도면 되겠나?”

그 대목에서 스트라비가 살짝 고민했다. 아만족의 도량형이 자신들의 것과 다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르고는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길이는 제 팔 길이와 동일하게. 무게는…….”

카르고가 옆에 놓인 미완성 검 세 자루를 들어 올려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여기에서 조금 모자라게 만들어 주십시오. 검 반 자루 정도로 말입니다.”

카르고의 요구 조건은 많고도 많았다. 심지어 손잡이의 길이와 칼날 및 창날의 경도까지 세세하게 설명했다.

“칼날 부분은 강하게, 그리고 골격 부분은 부드러우면서도 탄성이 있게 제련해 주십시오. 가능하시리라 믿습니다.”

“오! 그렇게 만들면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지. 어지간한 무기에는 쓰지 않는 기술인데 말이야. 아만족의 무기 제련기술이 무척이나 뛰어나군.”

그 말에 카르고가 씁쓸하게 웃었다.

“예전에는 장인들이 알아서 만들어 주었지요.”

보고 있던 도제들이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단순한 형태의 외날 도끼를 주문하는데 요구사항이 너무도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주의 검을 주문 제작해 줄 정도로 이름난 장인인 스트라비는 카르고의 말을 모두 알아들었다.

그러나 갑옷을 주문하는 일은 조금 난해했다. 스트라비가 견본으로 보여 준 사슬과 판금갑옷을 본 카르고가 얼굴을 찡그렸던 것이다.

“이런 형태의 갑옷은 입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 그럼 아만족 전사는 무슨 갑옷을 입지?”

“키틴질 피부를 가진 곤충형 몬스터의 껍질을 가공해서 입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몬스터가 있지만 저희 장인들이 선호하던 것은 퀘르바임이라는 몬스터의 껍질이었습니다.”

“퀘르바임? 처음 들어보는 몬스터로군. 어떻게 생긴 몬스터인가?”

카르고가 즉각 아만족으로부터 퀘르바임이라 불리는 몬스터의 외형과 크기를 설명했다. 모두 들은 스트라비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거대한 지네 모양의 몬스터로군. 아만족의 영토에는 그런 녀석이 흔한가 보지? 그런데 지네형 몬스터의 껍질은 그리 단단하지 않은 편이야. 탄성은 무척 강하지만 정도 이상의 힘이 가해지면 깨져 버릴 텐데.”

마수의 껍질을 이용해 만드는 갑옷은 발키온 연합에서도 흔히 사용했다. 그러나 지네형 몬스터의 껍질은 갑옷의 재료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일단 갑옷을 만들 정도로 큰 녀석을 찾기 힘든 데다 스트라비가 말한 약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군요. 하지만 오래 묵은 퀘르바임의 껍질은 매우 단단합니다. 어지간한 충격은 그냥 흡수해서 분산해 버리지요. 물론 오래 묵은 퀘르바임을 찾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작은 녀석의 껍질을 여러 겹 겹쳐서 만듭니다.”

“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연성 접착제를 사용해야 할 텐데. 굳어 버리는 접착제로 붙이면 한 대 맞는 순간 이음새가 분해되어 버릴 테니 말이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민물고기의 부레를 녹여 만든 접착제를 쓴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에다 금속제 리벳을 박아 고정시키더군요.”

뛰어난 실력의 장인답게 스트라비는 카르고의 말을 척척 알아들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전사인 카르고가 가장 중요한 접착제의 성분까지 알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그것을 만들기는 힘들겠군. 연성 접착제의 접착력은 그리 강하지 못해서 충격을 견디지 못할 거야. 자네가 말한 접착제의 성분을 안다면 가능하겠지만 말이야.”

“그렇다면 곤란하군요. 부득이 여러 겹 겹칠 필요가 없는 큼지막한 퀘르바임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순간 스트라비의 눈이 번쩍였다.

“흠, 그러고 보니 자네가 말한 조건의 몬스터가 멀지 않은 곳에 있군.”

“그게 정말입니까?”

반색하는 카르고를 보며 스트라비가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잡아 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거야. 왜냐하면 그놈은 이름까지 붙어 있는 무시무시한 녀석이기 때문이지.”

네임드 몬스터.

공식적으로 이름이 붙어 몬스터 도감에 기재된 무시무시한 몬스터를 뜻하는 말이다. 보편적으로 오래 살아 막강한 힘을 지닌 몬스터에 해당하며 자신의 영역을 굳건히 지키는 경향이 있다.

통상적으로 악명을 떨치는 몬스터에게는 모험가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몬스터의 육신 자체가 가진 가치, 그리고 죽으면서 뿜어내는 신력 이외에도 짭짤한 부수입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악명을 떨치는 몬스터의 레어에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달려든 모험가들의 장비와 소지품이 널려 있다. 육신은 몬스터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장비만이 남아 버리는 것이다. 악명이 높은 몬스터일수록 레어에 널린 갑옷과 무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통상적으로 모험가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좋은 무구를 갖추는 데 소비한다. 때문에 몬스터의 레어에 널린 장비들은 하나같이 고급품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것을 몽땅 수거해 팔아넘길 경우 주머니가 두둑해질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노린 모험가들이 파티를 구성해서 몬스터 사냥에 나선다. 물론 성공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레어에 자신의 장비를 더한 채 몬스터의 한 끼 식사거리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렇게 일확천금을 노리는 모험가들을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날름날름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몬스터에겐 이름이 붙여진다. 각별히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이다. 그런 네임드 몬스터들은 모험가들이 웬만하면 사냥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 돈도 좋지만 목숨마저 헌납할 순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간혹 철부지나 풋내기로 구성된 파티가 도박하는 심정으로 레어에 기어 들어가기는 하지만 목적을 이루는 경우는 희박하다. 실력 있는 파티도 이루지 못한 일을 어찌 풋내기들이 해낼 수 있다는 말인가? 몬스터가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경우는 바로 그러했다.

스트라비의 설명이 더해졌다.

“카누바라크란 이름을 가진 지네형 몬스터일세. 몬스터 도감에 따르면 무려 3백 년 전부터 존재했던 녀석이라고 알려져 있네. 성장 과정을 감안하면 족히 4백 년 가까이 묵은 녀석이라고 봐야겠지? 아무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모험가들이 그놈의 레어에 들어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네. 좁은 터널로 구성된 레어를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데다 극독을 방사하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정말 까다롭지. 아마 그놈의 레어에는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전리품이 쌓여 있을 것일세. 놈의 레어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모험가들이 공식적으로 오백 명이 넘어. 하나같이 실력 있는 파티들이지.”

“네임드 몬스터인데도 모험가들이 그리 많이 사냥을 시도했습니까?”

“그렇다네. 왜냐하면 카누바라크는 정말로 지독한 독을 품고 있다고 하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독액을 뒤집어쓴 모험가가 그대로 녹아 버렸다고 하니까.”

“사람을 녹여 버렸다면 독이 아니라 산이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생존자의 갑옷에 묻어 온 표본을 조사해 본 결과 순수한 성분의 독으로 밝혀졌네. 생명체의 세포조직을 완전히 분해해 버리는 최고급 독성분이지.”

통상적으로 독은 생명체를 중독시켜 서서히 죽어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생명체의 세포조직을 완전히 분해해 버릴 정도라면 독의 농도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다시 말해 카누바라크의 독을 한 방울이라도 얻는다면 그것을 희석해서 엄청난 양의 독을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룬 대륙에서 독은 매우 다방면으로 사용된다. 치료용으로 혹은 연금술의 시약으로 소비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몬스터 사냥이다.

궁수들이 사용하는 것은 대부분 독화살이다. 전사가 몬스터를 틀어막는 동안 궁수가 독화살을 날려 몬스터를 서서히 중독시킨 뒤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거기에는 제약 조건이 있다.

보편적으로 몬스터들은 독에 내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궁수들은 반드시 몬스터의 특성에 대한 해박한 상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반대되는 성분의 독을 사용해야만 몬스터를 중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견본을 통해 얻은 카누바라크의 독은 완벽한 무속성이었다. 간단히 말해 대부분의 몬스터에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사실을 알게 된 모험가들이 대거 카누바라크 사냥에 나섰다. 무속성의 독은 무척이나 비싸다. 카누바라크를 사냥해 독을 추출해 낸다면 엄청난 거금을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실에 눈독을 들인 모험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카누바라크의 레어로 기어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레어가 좁은 터널로 구성된 악조건에다 카누바라크의 독이 워낙 지독했기 때문이었다.

김정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