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호가 힘이 다 빠진 듯한 걸음으로 나간 이유는 그룹 스테이지에서 중요한 경기 가운데 하나였던 'Infi' 왕수웬과의 대결에서 0대2로 완패했기 때문이다. 오전까지 4승1패(부전승 포함)를 기록하고 있던 장재호는 오후에 중국 선수들 2명과의 연전이 예정되어 있었고 첫 경기였던 왕수웬과의 경기에서 패했다. 4승2패가 된 장재호는 남아 있는 경기를 이겨야만 4강에 들어갈 수 있었기에 걸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맥 빠진 걸음으로 이동하던 장재호는 팬들을 만나자 자세가 바뀌었다. 걸음을 멈췄고 펜을 받아 들고 즉석에서 사인을 해줬다. 장재호가 걸음을 멈추자 쭈뼛쭈뼛하던 팬들까지 동참하면서 순식간에 2~30명이몰렸다. 때마침 주위를 지나던 경기 진행 요원이 "장재호 선수의 경기가 남아 있으니 팬들의 이해와 양해를 바란다"라고 말하면서 주위를 물렸고 장재호는 숙소로 향했다.

아쉬운 마음에 인상을 쓸 수도 있지만 사인회 내내 장재호는 밝은 얼굴로 팬들을 만났다. 팬들이 요청하는 대로 사인을 해주는 것은 물론 셀프 카메라까지 찍어주면서 환하게 웃었다. 16년 동안 WCG 금메달에 도전해왔고 또 다시 좌절했지만 팬들과 함께 할 때 장재호의 얼굴에서는 좌절감이나 우울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야구나 농구 등 프로 스포츠에서는 사인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팬들이 사인을 요청했을 때 거절한다든지 불성실하게 임하면서 팬과 선수 사이에 갈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e스포츠가 아직 정식 스포츠나 프로 스포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장재호가 중국에서 보여준 팬을 대하는 자세는 프로 스포츠 선수들 그 이상이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성화 봉송 주자로 선택될 정도로 장재호가 인기를 얻은 배경에는 팬 서비스를 우선으로 하는 프로페셔널한 마인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리라.
프로 스포츠는 팬에 기반해 운영된다. 경기장을 찾아 오는 사람이 없고 팀 혹은 선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프로 스포츠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장재호의 팬 사랑은 e스포츠 선수들 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 스포츠 스타들이 귀감이 될 만하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