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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모든 e스포츠 종목이 '히어로즈'다

남윤성 기자

2018-12-15 11:20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e스포츠 대회를 폐지한다고 밝힌 공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e스포츠 대회를 폐지한다고 밝힌 공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하 히어로즈)의 글로벌 챔피언십(이하 HGC)이 폐지됐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13일 홈페이지를 통해 HGC와 히어로즈 대학 리그 등 히어로즈로 진행되던 e스포츠 리그를 폐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도타와 리그 오브 레전드 등 AOS 장르의 게임들이 흥행하자 블리자드가 갖고 있는 장대한 세계관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재미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히어로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히어로즈보다 늦게 등장했지만 큰 인기를 끈 오버워치에 나오는 캐릭터까지 한 곳에 모인 게임이다.

게임 장르는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던 AOS였지만 히어로즈는 흥행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블리자드는 세계 각지에서 중구난방으로 벌어지던 히어로즈 대회를 하나로 통합시켜 2016년 HGC라는 이름으로 리그를 열었다. 상금 규모도 100만 달러였기에 적지 않았고 통합 운영했기에 체계적이었다. 중국에서는 유명 게임단이 히어로즈 팀을 보강했고 한국에서도 젠지 등을 통해 히어로즈 팀 강화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블리자드의 결정으로 인해 HGC가 폐지되면서 히어로즈에 몸을 담았던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 게임단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상황을 맞이했다. 글로벌 리그 폐지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던 팀들이 거의 없었던 것을 보면 블리자드의 결정 또한 최근에 내려진 것일 수 있지만 어찌됐든 히어로즈 선수로, 지도자로, 관계자로 소속되어 있던 사람들은 손을 놓든, 다른 종목으로 갈아타야 하는 상황이다.

e스포츠 업계에서 이런 일은 적지 않게 일어난다. 대표적인 예가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다. e스포츠의 태동을 불러온 주인공이기도 한 스타1은 10년 가까이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한국형이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e스포츠를 만들어낸 종목이었던 스타1은 몇 가지 좋지 않은 상황이 겹치면서 리그가 사라졌다. 중계권 분쟁이 있었고 승부 조작 사건도 벌어졌으며 종목사인 블리자드와 한국 e스포츠 업계와의 지적 재산권 분쟁도 일어났다. 종목사의 직접적인 투자가 없던 상황에서 개인리그와 팀 단위 리그를 이끌어왔던 힘은 점차 빠졌고 스타1 리그가 열리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게임단이 해체했고 이로 인해 선수들은 실업자가 됐다. 하지만 워낙 인기 있었던 게임이었고 e스포츠의 씨앗이었기에 뜻있는 사람들이 소속팀 없는 선수들을 삼삼오오 모아 대회를 열었다. 불씨가 살아나자 블리자드도 리마스터 버전을 발표하면서 한국에서나마 다시 리그가 재개되고 있다.

히어로즈에게 스타1의 상황을 바라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스타1은 e스포츠의 태동이라는 상징성을 담고 있는 종목이다. 한국이라는 시장이 정말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e스포츠의 역사에 크고 굵은 한 획을 그은 지역이고 붓 역할을 스타1이 했기에 부활이 가능했다.

히어로즈가 스타1 정도의 가치와 존재감을 갖는 게임은 솔직히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어로즈로 진행되는 글로벌 e스포츠 리그인 HGC의 일방적인 폐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e스포츠야말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경영 혹은 마케팅의 논리에 취약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게임사가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블리자드가 그렇게나 강조했듯 지적 재산권이 존재하는 사유물이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게 맞고 옳다.

게임을 좋아하는, 게임을 잘하는 일반인들이 모여서 팀을 만들고 선수와 지도자라는 관계가 형성된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고 계약을 체결하고 연봉을 주는 회사나 개인이 생겨나고 대회에 출전해 경쟁을 벌이는 것이 e스포츠의 본질이다. 사재를 털어 넣은 사람도 있고 청춘을 건 사람도 있다. 비인기 종목이지만 응원하는 선수, 팀을 위해 자기 시간을 들인 팬들도 있다. 최소한 그들에게 마음을 정리하고 추억으로 돌릴 여지와 시간은 줘야 하지 않은가.

블리자드의 공지에는 어려운 결정이었고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라고 적혀 있지만 돈이 되지 않는, 인기 없는 사업은 빨리 잘라내야 한다는 야박한 논리가 담겨 있다. 이 결정이 히어로즈 e스포츠에 몸담았던 선수, 지도자, 관계자, 팬들의 마음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e스포츠가 진행되고 있는 모든 종목이 히어로즈와 같은 상황을 맞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게임사 주도로 e스포츠 리그가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더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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