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황금의 어스듐 40화

2019-07-15 14:38
아르고-황금의 어스듐 40화
[데일리게임]

티노는 아쉬움이 뚝뚝 넘치는 얼굴로 황금의 어스듐을 바라보며 말하다가 퍼뜩 시문을 돌아보았다.

“전에 어스듐을 폭파했을 때요.”

“…….”

왜 그때는 생각을 하지 못한 걸까? 이 정도 씨드를 퍼부은 어스듐이 폭파되었을 때 어스듐만 얌전히 파괴되고 끝날 리 없다. 거기다 완성품을 파괴한다 해도 기계와 시문만 있다면 얼마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자신의 연구를 묻어 버리려는 시문이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을 리 없다.

“시문 님은, 연구실은 어떻게 됐어요?”

“……기계는 반파되어서 1년 가까이 수리해야 했습니다. 저는 갈비뼈가 몇 대 나가고 어깨에 큰 관통상을 입고 머리를 다쳤었지요.”

시문은 어디까지나 담담하게 답했다.

“공방 전체를 무너뜨릴 생각이세요?!”

“설마요. 이 작업실을 설계할 때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밖에는 여파가 미치지 않도록 해 두었습니다. 티노 군은 이곳을 나가서, 제 작업실을 떠나 공방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황금의 어스듐에 스며들지 못하고 외부를 감돌고 있는 황금빛이 점점 넓어져 갔다. 아직까지는 지금껏 어스듐이 포화상태에 달했을 때 보았던 범위 내였다. 하지만 곧 그 선을 넘을 것이다. 티노는 그 선이 어디쯤인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티노는 긴장 어린 눈으로 황금빛을 바라보면서 외쳤다.

“같이 나가요!”

“싫습니다.”

시문은 단칼에 거절하며 싱긋 웃었다. 티노는 이제 막 그가 지금껏 보았던 확장 범위를 넘어서기 시작하는 황금빛을 보며 재차 외쳤다.

“죽으려는 거예요?!”

“…….”

“시문 님!”

티노가 버럭 소리치며 시문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렸다.

“……!”

시문의 가슴에 짧고 얇은 검신이 튀어나와 있었다. 티노의 손가락만큼 튀어나온 그 검신은 뻘건 피로 뒤덮여 있었고, 끝에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시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공포나 놀람 따윈 없었다. 놀란 것은 티노였다.

“테……?!”

티노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내려는데 침입자의 목소리가 그것을 덮었다.

“죄송합니다, 시문 님.”

“크윽!”

천천히, 천천히 검신이 뒤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끝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 시문의 몸에서 핏줄기가 격하게 뿜어져 나왔다. 시문은 비틀비틀 조작대 위에 손을 짚고 섰다. 그 모습에 티노가 무심코 그쪽으로 발을 딛었을 때, 침입자의 강하고 확고한 명령이 그를 붙들었다.

“그걸 꺼내라! 어서!”

“테, 테이슨 경……?! 여긴 어떻게……?”

“다 같이 죽을 셈이냐?! 어서!”

이제는 다급하기까지 한 테이슨의 지시에 티노는 반사적으로 황금의 어스듐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세 개의 뿔에서는 황금빛을 쏘아 내리고 있었고, 흡수되지 못하고 넘친 황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흉흉하게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어서!”

“……!”

마치 등을 떠밀린 듯 티노는 경솔히 손을 뻗어 황금의 어스듐을 움켜쥐고 원뿔 위에서 빼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황금의 어스듐을 향해 쏘아지던 세 줄기 황금빛이 티노의 팔뚝을 깊고 강하게 할퀴었다.

“아악!”

티노는 피가 뚝뚝 흐르는 오른팔을 왼손으로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그의 오른팔은 손등에서부터 팔꿈치까지 찢겨져 있었다. 깔끔하게 베인 것이 아니라 강한 힘으로 날카롭게 짓이기고 헤집은 것 같은 상처였다. 그동안 많이 다쳐 보고 아파 봤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아팠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간신히 눌러 삼켰다. 금방 온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해졌다. 팔이 절단된 것이 아닌가 싶은 고통 속에서도 황금의 어스듐은 손에 꼭 쥔 채 놓치지 않았다.

“괜찮니, 티노?”

테이슨은 걱정 어린 얼굴로 황급히 티노 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티노는 지독한 고통에 떨면서도 용케 그만큼 뒤로 물러섰다. 그런 티노의 모습에 테이슨은 당혹스러워했다.

“티노?”

그 순간 티노와 테이슨 사이에 주황색과 파랑색이 뒤섞인 스파크가 튀었다. 둘은 놀라 뒤로 물러섰다. 잠깐 튀어 오른 듯했던 스파크는 곧 높게 치솟아 둘 사이에 좁은 장벽을 만들어 냈다. 스파크의 원흉은 바로 세 개의 뿔에서 쏘아지는 황금빛 광선이었다. 티노가 황금의 어스듐을 빼내는 바람에 그것들이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고, 티노의 팔을 짓이긴 것처럼 바닥을 파고들어서 그 아래에 깔린 회로까지 건드려 버린 것이다. 잘려 나간 회로들은 머리 잘린 뱀처럼 꿈틀거리며 스파크와 불똥을 뿜어 댔다.

점점 높게 치솟는 스파크와 사방으로 터져 나오는 불똥을 사이에 두고 티노와 테이슨은 서로를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마주보았다. 문득 티노의 시선이 시문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조작대에 한 손을 짚은 채 그 옆에 무너지듯 앉아 연신 피를 토해 내고 있었다. 또한 그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 핏줄기가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테이슨은 티노가 무엇을 보는지 알아차리고 한없이 씁쓸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티노. 나는 친위대다. 사적인 감정이나 친분보다 우선해야만 하는 것이 있어.”

“…….”

“미안하다. 네가 다칠 줄은 몰랐어. 어서 치료하자.”

그리곤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는 그에게 티노가 물었다. 입을 여는 순간 신음과 비명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목소리를 쥐어짜서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어 냈다.

“여긴……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티노의 합리적이고도 당연한 질문을 테이슨은 의아하게 받아들였다.

“네가 가르쳐 줬잖니?”

“예?”

“전에 창고 사진 중 한쪽을 가리켰잖아? 뭐가 있다는 뜻이었겠지? 그래서 내 나름대로 조사를 했지.”

테이슨은 시문 뒤쪽에 뚫려 있는 화물용 무빙벨트를 슬쩍 돌아보았다.

“좁아서 들어오는 데 힘이 들긴 했지만 말이야.”

그것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다. 티노의 사소한 제스처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저 화물용 무빙벨트를 찾아낸 것까지는 이상할 것이 없다. 테이슨은 국왕을 바로 옆에서 보필하고 지키는 친위대원이니까 그 정도 예리함과 행동력을 갖춘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찾아냈다고 해서 곧장 이 안으로 들어온 것은 대단히 경솔한 행동이다. 테이슨은 시문과의 친분 때문에 성급하게 나서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던가? 무엇보다도 이 절묘한 등장 타이밍이 걸린다.

“그보다 치료가 먼저다. 얘기는 나중에 하자.”

테이슨은 안타깝다는 눈으로 티노의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티노에게는 그가 팔이 아니라 그 아래의 손에 쥐어져 있는 황금의 어스듐을 보는 것으로 느껴졌다. 티노는 시문만큼이나 많은 피를 뿜어내고 있는 오른팔의 윗부분을 왼팔로 움켜쥔 채 고통을 인내했다. 동시에 상황을 냉철하게 읽어 내고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알고 있었던 거죠?”

“무슨 소리니?”

“수도의 씨드가 끊기는 이유.”

그제는 두 번, 어제는 다섯 번이나 압축 작업을 했다. 그것은 곧, 수도 어딘가의 씨드가 그만큼 끊겼다는 뜻이 된다. 만약 친위대 쪽에서 수도의 씨드가 끊기는 것이 시문의 연구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왕성의 씨드가 끊긴 날 시문의 작업실을 수색한 것이나 연구의 완성이 막바지에 달한 순간에 나타난 것이 모두 설명된다.

티노와 실랑이를 할 생각이 없는 듯 테이슨은 선뜻 인정했다. 티노에게 모든 것을 밝히지 않았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겸연쩍음이 그의 얼굴과 목소리에 뚜렷이 떠올랐다.

“……그래. 고위 귀족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니까 그들과 궤를 달리하는 친위대에도 정보가 흘러 들어오는 게 당연했지. 거기다 무려 7년이나 이어졌으니까.”

“그럼 친위대에서 시문 님의 공방을 감시한 것은 완성품을 가로채기 위해서였던 겁니까?”

“너도 그것이 어떤 힘을 지녔는지 들었지? 그건 마땅히 국왕 전하를 위해 쓰여야 하는 물건이다.”

그리곤 테이슨은 쓰게 웃었다.

“네가 나에게 시문 님의 작업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것은 서운하지만 이해하고 있단다. 시문 님께 협박당했겠지. 너로서는 달리 수가 없었을 거야. 걱정하지 말거라. 다른 사람들에겐 내가 지시한 것이라 해 둘 테니까.”

테이슨이나 친위대 쪽에서 시문의 연구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 청소를 한다는 티노의 거짓말은 수도의 씨드가 끊기는 순간 들통 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티노가 친위대에 들어가기 힘들 게 분명하다.

티노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것이 자신의 꿈이 좌절되었기 때문인지, 다친 팔에서 밀려 올라오는 고통 때문인지, 또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티노를 보고 테이슨은 두 손을 가슴 위로 슬쩍 들어 보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염려 마. 대장에겐 네가 제안을 거절한 걸 말하지 않았어. 그러니 네가 협조한 것으로 해 두자. 그것이 온전하게 지켜질 수 있었던 건 네 덕이니 틀린 말도 아니잖아?”

“그거 참…… 고마운 말씀인데요?”

고통 때문에 띄엄띄엄 뱉어진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사의 말인지 비아냥거림인지 가늠할 수 없게 모호했다.

“넌 사관학교를 갈 수 있고, 졸업 즉시 친위대에 들어올 수 있는 거야. 이걸로 네게 전부 밝히지 않은 것을 용서해 주지 않겠어? 선배님을 떠올리게 하는 네가 이런 일에 미래를 망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티노는 고통 속에서도 손에 들린 황금의 어스듐을 꾹 쥐었다. 테이슨은 티노가 수도에서 먹고 살 곳을 소개해 주었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티노가 자신의 꿈에 계속 도전할 수 있도록 응원하면서 실질적으로도 도와주었다. 거기다 테이슨은 티노가 찾으려 하는 은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뜻 테이슨에게 이것을 내줄 수가 없었다.

감시 대상인 시문의 공방에 티노를 소개시켜 준 것이 과연 우연일까? 급료를 떼먹히거나 착취당하는 일이 없을 거라며 소개해 주었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친위대원인 테이슨이 소개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종종 와서 얼굴을 내비쳤다면 어딜 가든 이곳과 비슷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문에게 흘러들어간 어스듐이 어디에 쓰이는지 뻔히 알면서 티노에게 달콤한 제안을 한 것은 왜였을까?

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고통에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식은땀에 푹 젖어 있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서서 하나하나 따지고 드는 티노의 모습에 테이슨은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신중한 태도로 발을 떼어 세 줄기의 황금빛이 쏘아지는 부분과 그로 인해 파손되어 스파크와 불똥을 뿜어내는 회로 줄기들을 피해서 티노에게 다가갔다.

“자, 이리 다오.”

“……테이슨 경.”

티노는 이번엔 물러서지 않고 테이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테이슨은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티노가 다음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

“왜 혼자 오신 거죠?”

“…….”

시문이 어스듐으로 무엇을 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 적시에 기습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 비밀 작업실로 들어오는 길뿐이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티노가 알려 준 꼴이 된 화물용 무빙벨트는 테이슨 정도의 체격이라면 기어서 이동해야 한다. 그러니 많은 수가 기민하게 움직이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왕성의 씨드가 끊긴 날, 친위대가 이곳을 덮쳤을 때 저 통로를 알아내신 거죠?”

친위대와는 따로 움직였던 테이슨. 동료까지 피해서 티노가 무심코 흘린 단서를 뒤진 테이슨. 그리고 지금 이곳에 혼자 온 테이슨…….

“국왕 전하께 바치려는 게 아니라…….”

티노는 황금의 어스듐을 꾹 쥐었다. 팔 전체가 통째로 타들어 가는 듯이 아팠지만, 팔을 움켜쥐고 바닥을 구르고 싶을 만큼 아팠지만, 이걸 놓쳐선 안 된다고 본능이 말해 주고 있었다.

“본인이 남몰래 손에 넣으려는 거 아닌가요?”

아주 짧은 침묵. 그 속에서 굳은 얼굴을 하고 티노를 바라보던 테이슨이 이내 눈을 호선으로 접으며 입 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런, 티노…….”

그는 어디까지나 부드럽고, 어디까지나 온화하고, 어디까지나 다정한 얼굴과 미소와 음성으로 티노를 마주했다.

“네가 눈치도 빠르고 영리하고 당돌한 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예상보다 훨씬 똑똑하구나.”

테이슨의 모습이며 태도는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지만 티노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에 허덕이는 상태에서도 목 뒤를 훑고 지나가는 한기를 느꼈다.

“유감이다. 정말 네가 마음에 들었는데…….”

테이슨은 시문을 찔렀던 단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것엔 아직도 시문의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티노는 무기를 두고 온 것을 한탄하며 뒤로 물러났다. 멈추지 않은 핏줄기가 그 행적대로 바닥에 선을 그리며 따라왔다. 그것을 본 테이슨이 얼굴을 찌푸려졌다.

“어째서 아직도 피가 흐르는 거지?”

“……?”

차라리 정신을 놓는 것이 나을 것 같은 격통 속에서 테이슨의 진면목을 냉철하게 뜯어봐야만 했던 티노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 점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대단히 여유로운 테이슨이 눈치 챘다.

“그 물건은 모든 외상, 내상, 질병을 고쳐 주는 것이 아니었던가?”

“아……!”

신승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