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석] 최연성 감독의 마음에 담긴 말

2020-08-2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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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프릭스는 지난 20일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2020 서머 정규 시즌에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면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2개월 동안 강팀에게는 약하고 약팀만 잡는다는 비판을 받았고 kt 롤스터를 상대로도 쉽지 않은 승부를 벌였지만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10승7패로 포스트 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기쁠 만도 했지만 기자실을 찾은 아프리카 프릭스 최연성 감독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스프링부터 아프리카 프릭스 리그 오브 레전드 팀에게 달려 있었던 비난과 비판들을 극복하고자 했지만 깔끔하고 시원하게 끊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은 표정이었다.

"스프링에 이루지 못했던 포스트 시즌 진출을 서머에 달성했다"라고 인터뷰를 시작한 최 감독은 "5위로 포스트 시즌에 올라간 것이기에 우리가 만날 팀들은 모두 우리보다 잘하고 강하다"라면서 "매 경기 최대 출력을 발휘하면서 이겨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와일드 카드전에서 젠지 e스포츠와 T1 가운데 누구를 만나고 싶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서머 시즌에 한 번도 판독기가 잘못 작동한 적이 없기에 우리가 누구를 만난다고 해서 특별히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상대가 누가 됐든 정규 시즌처럼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 말했다 .

인터뷰를 마치기 전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의례적인 질문이 주어지자 최 감독은 시즌 내내 속에 담아 놓았던 말을 꺼냈다. "e스포츠 업계가 더 나은 분야가 되기 위해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라고 운을 뗀 최 감독은 "팀과 선수들을 위해 비난과 비판을 자중해달라"고 당부했다. "2020 시즌을 앞두고 선수단을 구성했고 로스터를 발표했을 때부터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스프링 시즌에서 연승을 할 때에도, 연패에 빠지면서 포스트 시즌 진출이 좌절됐을 때에도 비난이 계속 됐다"고 밝힌 최 감독은 "우리가 5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긴 했지만 '5위 밖에 못했다', '그 성적으로 가면 뭐하냐'라고 또 비난이 이어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 감독은 "리빌딩이 완료된 순간부터 팬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욕설이 시작됐다"라면서 "팀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해해달라는 수준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선수단이 시즌을 치르면서 어떻게 호흡을 맞추고 성과를 내느냐를 지켜봐주는 마음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라고 부탁했다.

"1년 예산과 선수 보유 현황 등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스쿼드를 구성하려고 노력했지만 팬들의 마음에 100% 들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한 최 감독은 "새로운 선수들이 영입되고 훈련을 통해 손발을 맞추는 과정 자체가 시즌 안에 이뤄진다. 초반에는 불안할 수도 있지만 갈수록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감독, 코치, 선수들은 물론, 사무국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이 과정이 시작되기도 전에 욕부터 듣는다면 누가 신이 나서, 힘을 내면서 시즌을 소화하겠는가"라면서 힘들었던 과정을 털어 놓았다.

그는 "팬들이 애정 어린 질책이라고 말씀하시지만 1년을 같이 하기로 한 선수들은 시즌을 시작하기 전부터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그러지 않아도 시즌에 들어가면 엄청난 포화를 받는 것이 선수들인데 손발조차 맞추기 전부터 좋지 않은 반응이 나오면 누가 의욕적으로 시즌을 보내려 하겠나"라면서 "진정한 팬이라면 선수단을 이해하고 스쿼드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힘을 내서 하나가 되어갈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을 보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팬들의 반응에 불과한데 내가 확대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선수단이 팬들의 바람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테니 팬 스스로 정화되는 자정 작용이 일어나길 바란다"라고 인터뷰를 마쳤다.

최연성 감독의 인터뷰는 최근 스포츠 업계는 물론 한화생명e스포츠, 설해원 프린스, T1 등 프로게임단들이 제기한 지나친 비방에 대한 우려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선수들이 팬들의 과도한 댓글 공격으로 인해 정신적인 피폐함을 겪은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얼마 전 프로 배구 선수가 스스로 생명을 끊는 일까지 벌어진 바 있다.

포지션이 나눠져 있고 지난 시즌 성적 등 선수들의 능력이 수치화되어 있는 스포츠의 경우 선수들에 대한 평가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 선수들에 대해 분석하고 우열을 가리는 과정이 스포츠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평가와 비난은 다르다. 팀이 리빌딩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모두를 만족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롤드컵 우승팀을 갖다 놓아도 부족한 부분이 보이기 마련이다. 예산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고 돈을 쏟아부어 에이스들을 모두 모은다고 해도 호흡이 완벽하게 맞아 들어간다는 보장은 없다. 개막 이전부터 손발을 맞추고 시즌 내내 함께 훈련하는 이유도 부족한 부분을 팀워크로 채우면서 발전하는 팀을 만들기 위함이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진다. 이기는 팀의 팬이라면 좋겠지만 매번, 평생 이기기만 하는 팀은 없다. 팀이 이길 때 같이 기뻐하고 팀이 질 때면 위로해주는 자세가 팬에게도 필요하다.

기다릴 줄 아는 마음도 요구된다. 서머 포스트 시즌에 간신히 올라온 팀이라도 포스트 시즌을 통해 성장, 발전할 수 있고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 드라마를 써내려가면서 월드 챔피언십에 나갈 수도 있다. 2017년 삼성 갤럭시는 정규 시즌에 한 번도 결승에 가지 못했지만 한국 대표 선발전을 통해 롤드컵에 니갔고 최종 우승까지 차지하지 않았나.

팀이 졌을 때 욕설 섞인 비난의 댓글을 쓰기 보다는 "믿고 있다", "할 수 있다"라는 댓글로 일으켜 세워주는 것, 그리고 조금은 답답하겠지만 끝까지 지켜봐주는 일이 최연성 감독이 말하는 자정 작용이자, 성숙한 팬심이 아닐까.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오류 수정했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