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석] e스포츠의 배리어 프리 '문자 통역'

2017-12-1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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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 프리는 고령자나 장애인들이 살기 좋은 사회가 되도록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이다. 현재는 건축, 디자인, 미디어 분야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건축 분야에선 장애인들이 조금 더 편하게 이동하게끔 건축물을 설계하고, 영화 분야에선 대사와 배경 음악, 효과음을 자막으로 넣어 청각 장애인에게 내용과 분위기를 전달한다. 배리어 프리는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모두의 편의를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최근 e스포츠에서도 장애의 장벽을 허물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어느 속기사의 선행'으로 알려진 e스포츠의 배리어 프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 공식 중계진들의 경기 해설을 자막으로 옮기는 형태로 진행됐다. 청각 장애인들이 e스포츠 중계를 온전히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속기사 이형렬 씨와 김태웅 씨가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2017 4강 중계를 문자로 전달한 것이다.

중계진의 전문성 있는 경기 분석이나 재치있는 입담은 e스포츠 리그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얻고 있던 즐길거리. 그런데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이 아니었고, 그 불편함을 알아챈 속기사들의 선행은 청각 장애인들에게 큰 행복감을 안겨줬다. 실제로 이형렬 씨와 김태웅 씨는 데일리e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롤드컵 중계 이후 고맙다는 말을 많이 전해 들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형렬 씨와 김태웅 씨는 최근 열린 KeSPA컵 2017 결승전에서도 문자 통역을 진행했다. 그런데 KeSPA컵의 사정은 조금 복잡했다. 계약 상의 문제로 일전에 롤드컵을 진행했던 플랫폼에서 KeSPA컵 중계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때 한국e스포츠협회가 유튜브에 공식 중계 방송을 개설해 문자 통역에 도움을 줬다.

한국e스포츠협회도 이번 KeSPA컵을 통해 문자 중계의 필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협회는 데일리e스포츠를 통해 "좋은 취지로 재능을 기부하는 속기사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어 기뻤다. 급하게 진행된 일이라 다소 부족한 점은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열릴 협회 주최 대회들도 많은 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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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GG에 올라온 청각 장애인의 문자 통역 후기. (사진=OP.GG 커뮤니티 캡처)
롤드컵과 KeSPA컵 중계로 대중에게 존재와 필요성을 알린 문자 통역은 지난 2일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청각 장애인의 시청 후기로 실효성을 입증했다. 해당 이용자는 "롤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편이다 보니 경기가 있는 날에 가끔 챙겨본다"며 "방송에서 나오는 해설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하나도 못 알아듣는지라 그냥 눈으로 즐겨본다"고 말을 시작했다.

이어 "그동안 해설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알고 싶었는데, 문자 통역을 통해 오늘에서야 궁금증이 다 풀렸다"며 "정말 재밌었다. 비록 해설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자막만이라도 내겐 선물과 같았다"고 전했다.

기쁨과 감사함이 온전히 녹아 있는 후기를 보고, 청각 장애인들의 고충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사실에 매우 부끄러워졌다.

문자 통역이 지속적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 경기가 어렵다면 4강, 결승전만이라도 말이다. 이후에는 속기사분들의 선행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동력을 구매하는 형태로, 조금 더 체계적인 절차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e스포츠는 누구나 접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즐길 수 있다. 그런데 그 즐김의 정도가 장애의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다. 문자 통역으로 이제 막 장벽 하나가 무너졌다. 정말 '하나'다. 우리는 무너진 장벽의 잔해를 치워 더 매끄러운 길을 만드는 한편, 또 다른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고민을 이어나가야 한다.


이윤지 기자 (ingji@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