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영주 만들기] 19화

2019-07-15 09:55
최강 영주 만들기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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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19. 고인 물은 썩기 마련

시무룩!

세상일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일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주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일이라는 것에 강해는 의기소침했다.

당연히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강해가 의기소침해지자 영주성은 강해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이내 강해가 마탑을 갔다 와서 의기소침해졌다는 소식은 엘리세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래서 그 때문이라는 것이냐?”

“그…그게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이미 마법사라기보다는 마녀의 기세를 풍기고 있는 엘리세였다.

마법사의 탑의 부탑주인 론은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에 안절부절못했다.

사실 자신들의 잘못은 아니었고 영주님인 강해도 딱히 말이 없었기에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평소에는 오지도 않던 엘리세가 쳐들어 와서는 이렇게 역정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해!”

“예?”

뜬금없이 하라는 말에 론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싼 값에 만들어 내란 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영주님의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가지고 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본디 높은 분들은 아랫것의 고민이나 고생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법이었다.

자신들이 모시는 분의 기분이 더 중요하지 다른 것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현대에서도 그러한데 무려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는 중세의 봉건 계급 사회는 더욱 더 그러했다.

“수시로 와서 확인할 테니까 알아 두도록….”

“아…. 알겠습니다.”

론은 안 된다고 하려고 했지만 엘리세의 눈빛에서 살기가 피어오르는 것에 포기를 하고야 말았다.

엘리세를 향해 반항을 해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지만, 영주님과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자신들의 어려움을 이해해 줄 이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하라고 하면 하는 것이 오히려 속이 편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실패한다고 해서 영주님의 지시였기에 부담감은 그리 크지도 않은 일이었다.

결국 안 된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렇게 강해의 TV와 자동차, 그리고 마법사들도 그 개념을 이해할 수 없는 비행기 개발이 마법사의 탑의 장기 프로젝트가 되었다.

물론 강해는 그 사실에 대해서 전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후훗! 영주님 깜짝 놀라게 해 드려야지.’

엘리세는 이 사실을 일단은 비밀로 하기로 했다.

결과물을 만들어서 강해에게 보여 주며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하아! 하아! 아마 영주님께서 칭찬해 주시겠지?”

엘리세는 몸을 꼬면서 강해가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헝클며 칭찬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흥분이 되었다.

강해의 칭찬이 너무나도 고픈 엘리세였다.

툭!

“뭐하는 거야?”

“에?”

엘리세는 누군가 뒤에서 자신의 머리를 헝크는 것에 순간 멍해졌다.

감히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영주 성 내에서 강해 말고는 없었다.

그렇기에 엘리세는 달뜬 얼굴로 기대를 하며 자신의 머리를 헝큰 영주님을 보기 위해 수줍은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영…주…. 이 새끼가! 쳐 돌았나?”

“응? 아니 왜 그래? 어? 야! 엘리세!”

강해가 아닌 라이칸드였다.

자신과 헤로스와 더불어 강해의 삼대 영웅으로 강해의 검이라고 불리는 최강의 전사였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엘리세에게는 조금 쓸 만한 지나가는 똥개 한 마리와 다를 바 없었다.

화르륵!

“죽여 버릴 테다! 파이어 볼!”

“야! 이 미친년아! 뭐하는 짓이야! 으악!”

엘리세는 감히 영주님도 만져 보지 못한 자신의 머리를 만진 천하의 불한당을 불로 태워 버리겠다는 듯 양손에 불덩어리를 만들어 라이칸드에게 던지며 날뛰는 사소한 일을 벌이고 있었다.

“잘 노네.”

그리고 그 광경을 강해는 영주성의 테라스에 몸을 걸치고서는 지켜보고 있었다.

꽤나 위험한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엘리세나 라이칸드가 어떤 괴물인지 조금은 알게 된 강해였기에 재미있게 노는 것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그래. 확실하게 그 엘프가 말한 대로 인간들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영주님. 하지만 아주 먼 옛날 어떤 문명이 있었던 듯이 그 흔적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었습니다.”

고대 문명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에 흥미가 생긴 강해는 헤로스를 돌아보았다.

“거기서 뭔가를 발견했나요?”

“너무 오래되어서 많은 것은 발견할 수 없었지만 이걸 좀 봐 주시겠습니까?”

강해는 헤로스가 건네주는 기묘한 덩어리를 받아들었다.

“이게 뭐죠?”

강해는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녹으로 그 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덩어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게는 제법 있었기에 처음에는 녹이 쓴 철광석 덩어리인 줄로 알았지만 이내 헤로스의 말에 놀라야만 했다.

“뒤쪽에 글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습니다.”

“글자?”

강해는 녹슨 철재 덩어리를 돌려보았고 글자로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언가 규칙적인 듯한 형태가 한 줄로 이어져 있었으니 글자로 여겨지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오래된 것인지 어떤 글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군요. 뭔가를 쓴 것 같기는 한데 이게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겠네요.”

“그렇습니다.”

엘프도 있는 상태이고 오크들도 약간이지만 글자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인간의 고대 문명이라고 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영주님.”

조금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비로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것 이외에는 별것 없는 보고에 강해는 자신의 옆에 놓인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육포를 물어뜯었다.

그 모습에 헤로스는 강해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서며 사라졌다.

“평화롭군. 평화로워.”

강해는 평화로운 영지를 둘러보다가 고대 문명의 흔적일 수도 있다는 철 덩어리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그것이 정말로 문명의 흔적이었는지는 모르겠고 정말로 문명의 흔적이었다면 어째서 그 문명이 지금에 와서는 사라져 버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강해는 현대의 교육을 통해 그 이유의 일부나마 알고 있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건가? 결국 교류는 필요하다는 것인데.”

지금의 이 정도의 인구가 단번에 사라질 위험 따위는 없었다.

적어도 강해가 죽을 때까지는 사라질 일은 없을 터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렇게 평화로웠으면 좋겠네.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말이야.”

강해는 결국 자신도 외부와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엘프 부족과의 교류를 허락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서로의 세력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등하거나 우리 쪽이 약하다면 그 교류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지금의 영지민들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는 것만 해도 거리상의 문제로 이동이 힘들잖아. 쳇! 비행기까지는 아니어도 자동차까지만 가능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강해는 엘리세 덕분에 자동차를 넘어 비행기까지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은 몰랐다. 그래서 영지민들이 걷는 것보다 조금 더 편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 없을까를 고민해 보았다.

물론 강해의 영지에도 말이 있었지만 말은 상당히 고가의 물건이었고 유지비 또한 막대하게 들어가는 동물이었다.

물류의 유통이 그나마 쇄락을 막아 준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영지민들의 자유로운 이동에 다른 중세의 영주들과는 달리 꽤나 관대한 강해였다.

“성이나 마을들이 꽤나 생겨날 텐데 자동차도 없이 걸어서 다니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 적어도 자전거라도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강해는 그 말을 하고 난 뒤에 잠시 멍하니 여전히 사랑싸움(?) 중인 엘리세와 라이칸드를 바라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서는 외쳤다.

“유레카! 아하하하하! 그래! 그게 있었지! 그게 있었어! 하하하하! 역시 난 천재야!”

강해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자 영주 성의 정원에서 불과 검기로 사생결단을 내고 있던 엘리세와 라이칸드는 큰 소리로 웃고 있는 강해를 올려다보았다.

“응? 영주님께서 뭔가 즐거운 일이라도 있으신 모양이군.”

“흥! 아! 역시 우리 영주님! 너무 호탕하시네요.”

강해의 즐거운 웃음을 방해할 수 없기에 휴전을 맺은 두 사람은 그렇게 강해가 웃음을 멈출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실력 있는 대장장이 한 명 불러 와!”

“예! 영주님! 제가 갔다 올게요! 워프!”

“……·.”

강해가 대장장이 한 명 불러오라는 말에 강해의 칭찬이 고픈 엘리세는 그대로 고위 마법 중에 하나인 워프를 감행하며 영지의 대장간으로 날아가 대장장이를 납치해 왔다.

“그러니까. 이건 이렇게 하고 이건 또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는 거지? 이해 가지요?”

“…….”

생각보다 구조가 그다지 어렵지 않는 자전거였기에 강해는 정말이지 열심히 자신의 영지에서 가장 실력 좋다는 대장장이에게 자전거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아! 조금 어려운가? 다시 설명해 드릴까요?”

움찔!

그림까지 그려주면서 설명을 하는 영주님과 함께 옆에서 구경을 하며 감히 영주님이 두 번씩이나 설명을 하게 할 거냐는 듯이 노려보는 엘리세와 라이칸드의 등줄기 오싹한 시선에 대장장이 덴은 몸을 움찔움찔거렸다.

“어머! 영주님!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셨어요. 너무 대단하시다. 저는 처음 보는 건데 정말 엄청난 물건인 것 같아요. 호호호호!”

“응? 아! 하하하하! 뭐 별거 아냐. 그냥 영지민들이 좀 편하게 이동을 할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하다가 떠오른 건데.”

“허! 영지민들을 그리 생각해 주시다니 역시 영주님의 자애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하하하!”

화기애애한 가운데 대장장이는 강해가 알려준 자전거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물론 그리 어려운 구조는 아니었기에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개념과 실제는 다르다는 것을 대장장이 덴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덴은 세 사람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대답을 했다.

“최선을 다해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응? 그래요! 하하하!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나한테 와서 물어보고요.”

감히 영주님께 물어볼 용기 따위는 없었기에 완성품을 가지고 왔을 때나 강해를 다시 볼까 그 중간에는 힘들 것이 분명했다.

‘후우! 몸체는 별것 아니고 저 체인이라는 것도 상당히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것일 테지만 브…브레이트? 아니 브레이크? 손잡이를 누르면 바퀴가 멈춰? 어떻게?’

덴은 머리카락이 뽑힐 지경이었지만 일단은 어떻게든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황송하게도 영주님께서 하사하신 자전거라는 설계도를 받아들고서는 물러나갔다.

그렇게 강해는 알게 모르게 영지의 과학 기술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열심히 아랫사람들을 부리고 있었다.

박천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