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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KT 이지훈 감독 "친근한 리더십"

기자

2009-09-06 16:14

[피플] KT 이지훈 감독 "친근한 리더십"
취임 1주년 "오해도, 꿈도 많다"

KT 이지훈 감독만큼 팬들의 공격 대상이되는 사령탑도 없다. 프로리그는 물론, 개인리그에서 KT 롤스터 선수가 패하면 댓글 중간에 꼭 이 감독의 이름과 욕설이 언급될 정도다. 예를 들어 스타리그에서 테란 이영호가 지면 "이지훈 옷 벗어라"라는 식의 글이 꼭 끼어 있다. 이지훈 감독이 나이도 어리고 스타크래프트 선수로 활동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KT 롤스터라는 'e스포츠계의 양대 산맥' 가운데 한 팀의 지휘봉을 잡기 때문이리라.
2009년 9월5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e스포츠 상설 경기장에서 열린 프로리그 챔피언십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뒤 이 감독을 만났다. 감독 취임 1주년과 프로게이머 10년을 되돌아 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10년째 질긴 인연
이지훈 감독은 e스포츠와 인연을 맺은 지 10년째다. KT 롤스터의 전신인 엔016 프로게임단이 1999년 창단할 당시의 멤버였다. 한정근이라는 저그 플레이어와 권태규라는 여성 프로게이머와 함께 한 축을 담당했다.

이 감독은 햇수만 오래된 게이머가 아니다. 피파라는 종목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활동하면서 KT에 무려 20여 개의 굵직한 대회 우승컵을 선물했다. KTF 시절 유니폼에 새겨진 3개의 별 가운데 이 감독이 우승해서 남아 있는 별이 2개였으니 '레전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WCG의 전신인 WCG챌린지 대회에서 우승했고 e스포츠 사상 첫 프로리그 대회였던 KIGL에서 4번 모두 우승했죠. 그 때는 피파 종목으로도 대회가 많이 열려서 그만큼 우승 횟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대학생 신분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인하대학교 체육교육학과 1학년 때 피파 대회에 나가기 시작한 그는 상금을 타서 용돈 쓰는 재미로 e스포츠와 인연을 맺었다. 소규모 대회에서 우승하면 300~5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들어왔고 이만한 아르바이트가 없다며 출전하다 프로게임단에 들어오게 됐다고.

[피플] KT 이지훈 감독 "친근한 리더십"

"체육 선생님이 꿈이어서 체대에 들어왔고 축구를 사랑해서 피파를 하게 됐어요. 우연찮게 정수영 감독의 눈에 들어 프로게이머가 됐고 연을 이어오고 있어요."

이 감독은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학사 경고를 두 번이나 맞는 듯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대학생 때 게임을 시작했고 불규칙한 생활로 인해 출결 상황이 최악이었던 것. 결국 이 감독은 아직도 졸업하지 못했다. 2008년 수석 코치로 재임하게 되면서 교생 실습을 포기했기 때문. 이 감독은 "얼른 졸업해야죠"라며 한숨을 쉬었다.

◆KT가 원했다
이 감독은 살아 있는 KT 롤스터의 역사다. 한일 월드컵의 바람을 타고 2002년까지 성행하던 피파 대회는 이후 한풀 꺾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감독은 KT에 남아 플레잉 코치 역할을 했다. 팀 내 최고령 선수였기에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에게도 생활 지도를 했고 마인드 잡는 법 등을 알려줬다.

2005년 전차 시뮬레이션 병으로 입대한 그는 2007년 3월 제대한다. 당시 KTF에서 코치직을 제의했지만 학업을 마치기 위해 거절한 그는 2008년 인턴 사원 경험을 쌓기 위해 KTF에 들어갔다.

"체육 교사가 꿈이어서 체교과를 들어갔는데 임용 고사의 문이 매우 좁았어요. 그래서 KTF에 신입 사원으로 들어가려고 인턴에 지원했는데 뽑아주더라고요."

인턴 시절 그는 스포츠단 소속으로 업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팀에서는 '인턴 이지훈'보다 '코칭 스태프 이지훈'을 더 원했다고 한다. 김철 감독이 사령탑을 맡고 있었지만 연거푸 포스트 시즌 진출이 좌절되면서 변화를 줄 감독이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수석 코치를 맡은 뒤 전갈을 받았어요. 다른 종목을 병행한다는 가정 하에서 감독직을 맡길 생각인데 어떠냐는 내용이었죠. 솔직히 스타크래프트는 다른 분들이 더 잘 하실텐데, 다른 종목도 같이 맡으라고 했을 때 마음이 움직였죠. 잘할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이 감독의 취임식이 열린 2008년 8월. 당시 단장을 맡고 있던 유우현 스포츠단 단장은 "KTF가 멀티 프로게임단으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파격적인 인터뷰를 한 바 있다. KT와 KTF의 인수 합병 작업으로 인해 스페셜포스 팀 창단이 늦어졌지만 어쨌든 KT는 두 종목의 게임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인 거죠. 두 종목의 프로게임단을 맡아 둘 다 좋은 성적을 내는 일이 쉽진 않겠지만 젊음이 갖고 있는 패기로 덤벼볼 생각입니다."

◆1년의 명암
이지훈 감독이 취임할 당시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누구나 한 번쯤 되고 싶은 KT 감독의 자리에 나이 어린 그가 부임하니 시기와 질투가 쏟아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1년을 보낸 그의 소회는 어떨까.

"많이 배웠습니다. 코치 시절에는 밀어붙이면 될 것 같았지만 감독이 되고 나니까 여러가지 입장과 부딪히더라고요. 회사와 선수, 코칭 스태프, 다른 팀과 협회 등 조직까지 고려해야 했어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적응된 것 같아요."

1년 동안 가장 신경쓴 부분은 선수들의 입장이었다. 선수 출신이다 보니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했고 마음껏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주려 애썼다. 그러나 결과는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였다.

"경기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도록 배려했는데 선수들이 오히려 나태하고 해이해지더라고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피플] KT 이지훈 감독 "친근한 리더십"


이 감독은 08~09 시즌의 마지막 라운드인 5라운드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전체 성적 8, 9위를 오가며 포스트 시즌에 오를 확률이 거의 없었지만 5라운드에서 선수들이 보여준 파이팅과 하면 된다는 마인드를 잊을 수가 없단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눈빛을 보면서 09~10 시즌에는 KT의 숙원을 풀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5라운드 이후 지금까지 팀 단위 대회 성적을 보면 11승4패 정도 한 것 같아요. 이런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내년 시즌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 때는 그 때의 변수가 작용하겠지만 희망이 보입니다."

◆'내 사람화' 작업
KT는 08~09 시즌을 위해 많은 선수를 영입하면서 색깔 바꾸기 작업을 진행했다. 2008년 하반기에 하이트로부터 박찬수를 데려왔고 김재춘을 뒤 이어 받아들였다. 또 2009년 2월에는 안상원, 3월에는 박지수를 영입하면서 막판까지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4명이나 되는 선수를 영입하면서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니까 팬들의 원성이 대단했어요. 관련 기사를 보기 싫을 정도로 비난의 댓글이 쏟아졌죠."

이 감독은 비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4명의 선수가 들어왔지만 팀 적응이 완료되는 시점은 09~10 시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찬수와 김재춘은 팀에 합류한 지 1년 가량 됐기 대문에 적응을 완료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선수들에게는 적응 기간이 거의 없었고 곧바로 실전에 투입됐기에 성적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아직 무리라는 것.

"들어오자마자 잘하는 선수들이 오히려 이상하죠. 연습 환경, 연습 상대, 심지어는 밥맛, 잠자리 등 모든 것이 바뀌는데 순식간에 적응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요. 같이 부딪히고, 말을 나누고, 마음까지 하나가 되어야만 진정한 우리 식구가 되는 거죠."

이 감독은 이 과정을 '내사람 만들기'라고 불렀다. 영입한 선수가 진정한 팀의 일원으로 거듭나는 일을 진행하는 일련의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얼마전에 영입한 스페셜포스 팀까지 대략 10명의 선수들을 대상으로 '내사람 만들기'를 진행하고 있다.

[피플] KT 이지훈 감독 "친근한 리더십"


"모르는 사람이 내 식구가 되기 까지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라고 생각해요.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꾸짖고 모질게 대하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선수들과 나이 차가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형처럼 말로 다독이고 삼촌처럼 따뜻하게 대하려고 합니다. 선수들도 말로 하면 다 알아들을 나이이고 프로잖아요. 면담 자주하고 고민 상담도 많이 하고 식구처럼 편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내 사람이 된거죠."

◆팬 지적 겸허히 받아드린다
누리꾼들의 지적을 가장 많이 받는 팀 가운데 하나가 KT 롤스터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선수들 성적에 대한 관심도 많고 최근 이슈가 된 팀 이름 선정 등에도 팬들이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아이디어를 개진하고 있다. 게임단 또한 '팬과 함께하는 게임단'이라는 모토로 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게임단이고 인기있는 프로게이머들이 몸 담았던 곳이기 때문에 관심이 대단합니다. 성적만 받쳐줬어요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을 텐데 제가 지휘봉을 잡아도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 비판을 하시겠죠. 팬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감독은 정당한 비판과 개선책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오해를 사는 부분에 대해서는 해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코칭 스태프 인선과 관련해서는 꼭 밝혀야 겠다고 주장했다.

"김윤환과 임재덕을 새로운 코치로 내정했습니다. 이를 두고 팬들께서 조용호와 변길섭을 왜 버렸냐며 반발이 심하더라고요. 올드 게이머의 한 사람인 저로서는 조용호와 변길섭에 대한 애정이 더 큽니다. 왜 안 잡았겠습니까. 다들 사정이 있어서 고사했어요. 변길섭은 은퇴 이후 함께 했지만 군 문제가 남아 있어서 입대해야 겠다며 팀과 결별했고 조용호에게는 선수 복귀를 제안하기도 했고 코치를 해보겠냐고도 했지만 조용호 본인이 'NO'했어요. 그런데 얼마전 인터뷰를 보니 돌아오고 싶다고 했더라고요. 상황이나 타이밍이 안 맞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그들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어요."

김윤환의 코치 선발과 관련해 이 감독은 단순히 코치에 머무는 것보다 테란 전문 트레이너로 육성하고 싶다고 했다. 이영호나 박지수 등 테란 주전 선수들로부터 최근 트렌드를 잘 알고 따라갈 수 있는 코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 받았고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STX로 이적한 테란 김윤환과 다시 연락이 닿았다고. 김윤환도 선수를 더 해야 할 지 갈등하고 있던 차에 친정집에서 코치 생화를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윤환의 영입을 놓고 '정수영이 뽑고 김철이 키우다가 이지훈이 뒤를 봐준다'는 비난이 일었어요. 그런데 저나 팀이나 뒤를 봐줄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습니다. 당장 포스트 시즌을 가야하고 전담 트레이너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김윤환을 영입한 것입니다."

◆친근한 리더십
이지훈 감독에게 어떤 스타일의 지도 방식을 추구하느냐고 물었다. 이 감독은 대뜸 "형이 되고 싶다"고 했다. 감독으로서는 참으로 택하기 어려운 형을 꼽은 이유는 뭘까.

[피플] KT 이지훈 감독 "친근한 리더십"


"카리스마 있는 감독님들도 있고 지장형, 덕장형 등 여러 스타일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앞서 말한 것처럼 선수들에게 형처럼 다가가고 싶어요. 고민을 터놓을 수 있고 대화하는 과정에 벽이 없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 감독이 형을 택한 이유는 자신이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선수들이 스타가 되기 위한 조력자가 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친근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을 캐치하고 짚어 줄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감독이 되길 기대해 본다.

글, 사진=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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