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골프장을 찾는 이들은 ‘그늘집’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주 생소할 것이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니까. 하지만 그늘집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마치 골프장의 상징인 것처럼 편안하거나 정겹게 느껴진다. 골프 기사나 칼럼을 다루는 언론 매체에서 그늘집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를 살려 고정 연재물 제목으로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1960~70년대 골프는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스포츠였다. 정치인, 군 장군과 기업가 등이 친선과 교류를 목적으로 골프를 많이 즐겼다. 일반 국민들과 멀리 떨어진 한적하고 은밀한 장소인 골프장에서 그들만의 운동으로 골프를 했던 것이다. 운동으로 하기보다는 사교와 친선을 위한 목적이 컸던 만큼 골프장은 안락한 장소여야 했다. 골프를 하면서는 코스 중간에 식사도 하고 술도 적당히 한 잔씩하며 환담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4~5개홀을 돌며 나무가 무성한 그늘진 곳에 적당한 간이 식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골프애호가로 소문난 김종필 전 국무총리(JP) 등 일부 정치인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JP는 ‘낭만 정객’으로도 불린다. ‘몽니’ ‘자의 반 타의 반’ ‘유구무언’ ‘춘래불사춘’ 등 이른바 ‘JP판 정치용어’는 이미 일상어가 되었다. JP는 ‘달변가’답게 스스로 명언도 적잖게 만들어냈다. 그중 하나가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이다. 국가정보원 전신인 중앙정보부의 표어로 널리 알려졌다. 5·16 직후인 1961년 5월 20일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초대 부장으로 부임하며 이 표어를 지었다. 중앙정보부는 딱 골프 치는 것과 반대되는 일을 하는 셈이었다. 골프 회동을 자주 하며 ‘골프 예찬론자’이기도 했던 JP는 술도 마시며 담소를 하던 그늘집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중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공직자 골프금지령을 내린 것은 그늘집으로 상징되던 골프장에서 이뤄진 정치적 담합, 음모나 모의에 대한 사전봉쇄의 방책으로 나온 것이라는 추측이 있기도 했다.
외국 골프장에도 필드에 간이 식당이 있다. 간단한 식음료를 파는 ‘스낵바(Snack Bar)’를 운용한다. 미국의 일부 골프장은 황금마차 같은 ‘카트걸(Cart Girl)’로 불리는 이동형 간이매대를 골프코스내에 운영, 식음료를 판매한다고 한다. 일본 골프장들은 전반 9홀을 끝내고 20~30분 휴식시간을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에서 갖는다. 영국에서는 중간에 잠깐 쉬는 곳을 ‘하프웨이 하우스(Halfway House)’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국 골프장 스낵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핫도그(Hotdog)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자장면이라고 한다. 마치 중국집이나 한식집처럼 운영되는 곳이 한국의 그늘집이다.
사실 그늘집은 그냥 폼잡으려고 만들어놓은 곳은 아니다. 골퍼들이 뭔가 필요할 때 있어야 하는 곳이다. 간단히 용변도 보고, 식사도 하며 여유있게 쉬고 갈 수 있는 장소이다. 그늘집이 단순한 편의시설로만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늘집이 비싼 가격으로인해 골퍼들이 외면하고 직원들의 비싼 인건비로 인해 점차 무인화하거나 대형 편의점에서 대리운영하기도 한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