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요원들은 입장하는 관중들의 체온을 재고 손 세정제를 짜주며 마스크를 나눠줬다. 경기석에 앉은 선수들은 불편한 듯 마스크를 만지작거리면서도 코와 입을 가린 채 묵묵히 연습에 나섰고 관중들은 히터와 열기로 데워진 무더운 경기장 안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e스포츠계 역시 비상이 걸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처음 발현한 중국은 춘절 연휴를 맞아 휴식기에 접어든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리그(LPL)를 비롯한 모든 대회를 무기한 정지시켰다.
국내 리그도 다르지 않다. 2월 LoL,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오버워치 등의 대회가 개막을 앞두고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악재에 대응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라이엇 게임즈는 지난 29일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스프링 개막을 일주일 앞둔 상태에서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무관중 경기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또한 펍지주식회사 역시 2월 예정된 펍지 글로벌 시리즈(PGS) 한국 대표 선발전의 연기와 온라인 진행을 고려하고 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2월 15일부터 중국 상하이와 포산, 항저우에서 예정돼있던 오버워치 리그 홈경기 일정을 모두 취소하는 강수를 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인 만큼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 모습이다.
쉽지는 않은 결정이다. 무관중 경기든 일정 연기·취소든 아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오버워치 리그의 경우 세 시즌 만에 처음으로 연고지에서 열리는 홈경기인 만큼 관계자들이나 팬들이나 기대가 최고조로 올라온 상황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 원칙은 안전이며 그렇기에 각 종목사들은 손해를 감수하기로 했으며 팬들 역시 이 결정을 받아들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 e스포츠의 안전 의식 성장이 눈부시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신종 플루)나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한국을 덮쳤을 때 리그 중단이나 무관중 경기를 고려하기는 했지만 리그를 중단한 사례는 서든어택 챔피언스 리그뿐이었다. 당시 진행된 리그들은 각자 방역 대책을 마련해 선수와 팬들의 안전이 모든 관심을 기울였지만 이번처럼 대다수의 종목사들이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다.
지난 메르스 사태 때 국가적인 방역 실패로 3, 4차 감염자가 발생해 186명 감염, 38명 사망이라는 참담한 결과가 나왔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 머물러야 하는 e스포츠 대회인 만큼 단 0.001%의 위험이라도 있다면 선수와 팬들의 안전을 걸고 도박할 이유가 없다. 자칫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 앞에서는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하기에 안전 문제에 있어 '과잉 대응'이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각 리그의 대응 방식과 속도는 달랐지만 대회 시작 전 과감한 결단을 내린 종목사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더불어 이번 종목사들의 결정이 단순 좋은 사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번 일을 계기 삼아 추후에 발생할 질병 및 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을 마련해 더욱 안전한 e스포츠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현유 기자 hyou0611@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