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마법…신대근의 무대 적응 훈련
김 감독은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시즌이 열리기 전부터 ‘신대근’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인터뷰 때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신대근은 정말 실력 있는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신대근은 1, 2라운드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며 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8승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가져왔음에도 김 감독은 신대근에 대한 믿음을 쳐버리지 않았다.
“대근이가 연습할 때 보여주는 플레이를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에요. 그런데 방송경기에서는 그 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하더라고요. 항상 아쉬웠어요. 그래서 빨리 위너스리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위너스리그에서는 대근이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거든요.”
김 감독의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신대근은 위너스리그에서만 16승을 챙기며 위력을 과시했다. 김 감독은 “방송경기에 적응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위너스리그는 '방송 울렁증'을 극복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세트만 하고 끝나는 기존 프로리그 방식과 달리 승자연전방식은 1승을 거두면 계속 경기할 수 있잖아요. 대근이의 경우 1승을 거두고 나면 긴장이 풀리면서 연습실에서 경기하듯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위너스리그를 기점으로 대근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죠. 다행스럽게 제 예상이 맞아 떨어져 대근이가 위너스리그에서 다승 상위권에 오르게 됐고 자신감도 충만해 졌어요. 위너스리그의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해요.”
◆박자 조율만 남았다
연습에 임하는 마인드가 달라지며 독기를 품고 죽을 힘을 다해 연습에 임하고 있는 신상호, 점점 에이스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박상우, 자신감을 회복한 신희승, 방송 경기에서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신대근 등 이제 이스트로는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갖췄다. 그리고 이제는 선수들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 박자를 맞추는 일만 남았다.
“1라운드에서는 상호가 잘해줬고 2라운드에서는 희승이가 잘해줬고 3라운드에서는 대근이가 잘해줬어요. 상우는 꾸준히 승수를 쌓아줬고요. 이제 이 네명의 선수가 동시에 잘할 수 있도록 잘 지휘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저에게는 4라운드가 시작하기 전 해결해야 할 숙제가 생긴 셈이죠.”
좋은 연주자들을 모두 키워냈으니 이제 이 연주자들이 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휘자가 조율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김 감독은 당장 이번 시즌에서 큰 결과물을 낸다는 조급한 생각보다는 내년 09~10시즌에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배고프다고 밥을 급하게 먹으면 체하듯 당장 눈앞의 승리만 연연한다면 강팀으로 거듭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음 시즌 이스트로 선수들이 얼마나 잘해줄 지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어요. 그렇다고 이번 시즌을 준비하는 기간으로만 삼지는 않을 겁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정말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있어요. 단 성과가 빠르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으려고 제 스스로도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습니다.”
◆미안하다 기수야
김 감독은 인터뷰 내내 "오상택 코치님과 (서)기수와 같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에서 서기수의 이름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단순히 선수 한 명의 역할이 아니라 코칭 스태프의 역할까지 겸한 셈이었다. 김 감독과 동갑인 서기수에게 김 감독은 든든한 동반자이자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드는 선수라고 했다.
“기수에게 정말 미안해요. 감독으로 부임한 뒤 기수에게 ‘네가 상호보다 더 잘하는 것은 알지만 지금 팀 상황상 미래를 내다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너보다는 상호를 더 많이 기용할 계획’이라고 말했어요. 다른 선수라면 반발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기수는 누구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선수였기 때문에 제 생각에 동의했어요.”
팀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선수가 몇 명이나 있을까? 서기수는 팀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주장으로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코칭 스테프와 선수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도 담당했다. 프로리그에 자주 출전하지 않은 것도 팀 미래를 위해 후배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해마다 주장이 바뀌는 다른 팀과는 달리 이스트로가 3년 내내 서기수를 주장으로 내세웠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수가 스타리그 16강에 올라갔을 때 제 일처럼 기뻤어요. 팀을 위해 희생만 하던 기수가 본인의 힘으로 생애 첫 스타리그 16강에 진출하니 감동적이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첫 경기에서 너무 아쉽게 장비 문제가 생겼죠. 그때 경기의 유불리를 떠나서 생애 첫 16강전을 좋지 않은 추억으로 남기게 됐잖아요. 정말 이렇게도 운이 없나 싶어서 제가 다 속상했어요.”
서기수는 공군에 지원했다. 김 감독은 서기수가 공군에 합격해 계속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이스트로에서는 희생만한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는 김 감독은 공군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게임과 연습에만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기수가 반드시 공군에 갔으면 좋겠어요. 이스트로에서 공군에 합격한 선수가 나온다면 팀 입장에서는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은퇴를 결심했다가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얼마 전까지 스타리그 16강에서 활약했던 선수인데다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인성도 올바른 선수잖아요. 공군이 좋은 성적을 내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라고 확신합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시즌 우승을 향해
점점 안정된 전력을 다지고 있는 이스트로. 김 감독의 꿈은 광안리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것이란다. e스포츠에서 한편의 드라마를 찍고 싶다는 김 감독은 이스트로 우승이 꿈만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루기 힘든 목표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번 시즌을 통해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제가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팀을 우승 시키고 싶습니다. 선수들의 의지도 대단하고요.”
박문기의 은퇴가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김 감독은 현재 저그 영입을 추진중이다. 이스트로가 전력 강화를 위해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이스트로의 전력이 안정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제가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에는 이스트로에 들어오는 선수들은 모두 은퇴를 앞둔 선수들이었잖아요. 감독 일을 시작하면서 오상택 코치님과 이야기 했던 것이 있어요. 전력 보강을 위한 이유를 제외하고는 선수를 새로 받지 말자고요. 소위 말하는 ‘노인정’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어요.”
선수를 키우고 팀을 정비하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아 부은 김현진 감독. 선수 시절에는 있었던 여자친구도 헤어진 지 오래. 감독이 된 이후 선수들과 팀만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그만큼 감독 일에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김 감독의 마법은 현재도 진행 중이었다.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어요.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줬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거죠. 아무리 옆에서 이야기해도 스스로가 깨닫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요. 그런 점에서 스스로 깨닫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러울 따름입니다.”
때로는 형처럼 다정다감하게 때로는 선생님처럼 엄하게 선수들을 대하며 이스트로를 최고의 팀으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김현진 감독. 이스트로가 정상에 올라 전 e스포츠 관계자와 팬들이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김현진 감독의 말이 현실로 실행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다.
“약팀이라는 설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예전에 (이)호준이가 이영호에게 에이스결정전에서 패한 뒤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 하더라고요. 그래서 위로를 해주기 위해 다가갔는데 호준이 몸에서 뜨거운 열이 뿜어지는 것을 보고 저도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나요. 그때 이 선수들과 함께 꼭 우승을 일궈 내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어요.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지금 이 멤버 그대로 광안리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같이 기쁨의 눈물을 흘릴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켜봐 주세요."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