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e스포츠 종목으로 자리를 잡은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한국은 더욱 맹위를 떨쳤다. 2012년 처음으로 나선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서 2위를 차지한 한국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연달아 우승을 차지했다. e스포츠 최고의 환경과 인력을 갖춘 한국의 시스템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늘었다. 방송이나 경기장 환경 등을 견학하기 위해 각국의 e스포츠 관계자들이 수시로 방문했고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유수 외국 게임단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데일리e스포츠는 한국의 e스포츠 인프라를 점검하고자 업계 종사자들을 모아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국e스포츠협회 김철학 사무국장, 젠지 e스포츠 이지훈 단장, FEG(Fighting Esports Group) 한국 법인 서형석 대표,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 이정훈 e스포츠 사업본부 리그운영팀장이 귀중한 시간을 내줬다.
DES=한국 e스포츠는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최근 국제 대회 성적이 하락하면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3번 시드가 플레이-인 스테이지부터 참가하는 등 실력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련의 일들로 인해 앞으로 e스포츠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가져가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많습니다. 어디부터 이런 일이 시작됐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지훈=사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1등 지상주의인 한국 스포츠 문화가 e스포츠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1등을 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강했던 대기업 팀에서 감독 생활을 하다가 2018년부터 젠지 e스포츠에서 단장직을 맡고 있는데 그동안 내 시야가 좁았다는 것을 느꼈죠. 1년 단위로 모든 것을 쏟아붓다보니 유망주 육성에 소홀했고 정상급 선수들에게만 시선이 모였습니다. 지금 있는 선수들도 훌륭하지만 언젠가 이들의 기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죠. 여기에다 외국에서 한국 선수, 코칭 스태프 등 인적 자원을 많이 데려가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죠. 2017년 롤드컵을 끝으로 한국은 LoL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지역들의 수준이 올라왔습니다. 조금 늦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제라도 많은 게임단들이 유망주 육성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지난 시절에 대한 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서형석=킹존 드래곤X라는 팀을 운영하고 있는 FEG 코리아의 대표 입장에서 e스포츠 시장을 바라본지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주제로 내세우신 '지금이 LCK의 위기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위기보다는 도약의 기회라는 답을 하고 싶습니다. 2014년 선수들이 중국이나 미국, 유럽으로 대거 빠져 나가는 엑소더스 현상을 경험한 이후 한국은 지속적으로 우수한 선수들이 외국 팀으로 나갔습니다. 일찌감치 나간 선수들은 이제는 용병이 아닌 현지 선수로 인정을 받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죠. 최근에는 선수 뿐만 아니라 감독, 코치, 분석가 등 다양한 직군이 외국에 진출해 한국의 노하우를 전세계 팀들이 흡수했습니다. 중국, 북미, 유럽 등 메이저 지역으로 불리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팀들은 한국과의 실력 차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평한 운동장이 만들어진 셈이지요. 저는 지금부터 공정한 경쟁이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수년간 쌓아온 경험이 주는 프리미엄은 없어졌지만 한국은 여전히 좋은 선수와 유망주들을 데리고 있고 승리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한다면 앞으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단 이전처럼 특정 게임단이나 LCK라는 리그가 압도적인 선두로 치고 나가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격차가 없어진 상황에서 더 열심히 분석하고 노력하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지역이, 팀이 이기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DES=다른 지역의 발전으로 평평한 운동장이 만들어졌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이정훈=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희는 LCK의 실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세계가 상향평준화 되면서 유럽과 북미 지역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한국 선수와 한국 게임단은 늘 톱 티어에 자리하고 있고 늘 우승권이라고 꼽히고 있습니다. 최근 MSI나 롤드컵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다각적으로 원인을 분석해봐야 할 문제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LCK가 LoL e스포츠를 주도했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는데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북미의 LCS나 유럽의 LEC를 시청하는 사람은 적지만 외국에서는 LCK를 시청하고 따라잡고자 하는 팬이나 관계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외국 시청자나 선수들이, 팀들이 LCK를 인정하고 분석한다는 이야기죠. 국제 대회에서 정보의 차이로 인해 성적이 좋지 못한 것이지 실력 차는 아니라고 봅니다. 앞으로 LCK가 상대적 우위에 오르는 것은 어렵겠지만 평평한 운동장에서 경쟁을 펼치려면 정보 수집과 분석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습니다.
김철학=선수들의 개인 기량은 문제가 없습니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다른 지역들의 수준이 많이 올라왔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데 많은 인원이 동원되는 것을 현장에서 지켜봤습니다. 중국은 무대 위에 올라가서 밴픽을 진행하는 대표팀 코칭 스태프가 있었지만 무대 아래에는 한국 선수들의 성향을 잘 아는 다른 게임단의 한국인 코칭 스태프도 지원을 왔습니다. 한국형 시스템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중국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분석에도 투자를 이어온 것이 성적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북미와 유럽 지역은 창의적인 전략을 많이 꺼내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경기를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실험적인 밴픽도 자주 볼 수 있었죠. 한국은 다른 지역이 만들어낸 전략과 전술을 더욱 고도화시키는 장점이 있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성적을 중시하기에 실험적인 시도를 두려워하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합니다. 풀뿌리부터 즐기는 문화로 바뀌고 분석에 대한 투자가 조금만 더 이뤄진다면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한국 e스포츠가 위기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DES=업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인 프랜차이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지훈=프랜차이즈가 도입된다면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승강전이 존재하기에 한 시즌을 포기하면서 과감한 변화를 가져가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만약 A라는 기업 게임단이 챌린저스 코리아로 강등된다면 해당 기업이나 투자자가 게임단을 운영하려 할까요? 실제로 CJ는 챌린저스 코리아 강등 이후에도 팀을 유지했지만 LCK로 승격하지 못하는 시즌이 길어지자 팀을 해체했습니다. 프랜차이즈가 진행되어야만 장기적인 투자도 가능하고 팀과 함께할 분석가와 코칭 스태프를 늘릴 수 있겠죠. 당장 중국 팀들이 연고제까지 진행하면서 성장하는 것을 보면 프랜차이즈가 이뤄지더라도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지가 고민입니다.
DES=그렇다면 프랜차이즈를 위한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서형석=한국 e스포츠 시장에는 대기업이나 젠지 같은 게임단들이 꾸준히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수익을 낼 정도의 단계에 올랐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꾸준한 투자로 수익이 발생하고는 있지만 아직 사업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죠. 라이엇 게임즈가 스포츠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고 많은 사람들이 가능성을 보고 게임단 운영이나 미디어 콘텐츠 제작 등을 위해 투자하고 있지만 조금은 더디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랜차이즈를 e스포츠의 사업화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졌을 때 사업화라고 부를 수 있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 e스포츠가 가지는 상징성과 역학 구조를 본다면 선구자적인 사업을 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자에 관심이 있는 곳은 있지만 아직까지 투자를 위한 제반 조건이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산업을 키워나갈 수 있는 규모의 파트너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한국e스포츠협회와 라이엇 게임즈, 정부가 제도나 법, 규정 등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DES=한국 스포츠 시장은 인구 5,000만의 작은 규모지만 e스포츠는 전세계에서 소비되는 콘텐츠입니다. 게다가 한국 팀, 한국 리그의 수준이 세계적이기에 한국 시장에 대한 외국 및 대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라이엇 게임즈에도 글로벌 기업들의 러브콜이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이정훈=과거와 비교해 후원사와 중계권자 모두 큰 규모의 투자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통신 3사가 LCK 중계를 결정하면서 불과 몇 년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큰 계약을 이끌어냈고 스폰서도 공격적으로 투자를 해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많은 관심까지 이어져 직원들이 일일이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LCK에 관심이 모이는 것과 동시에 게임단에도 투자가 이뤄져야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다만 게임단에 투자하기에는 몇 가지 장애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게임단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을 연결해줬을 때 승강전과 한국의 시장 규모, 나올 수 있는 성과의 불확실성 등에 대한 부담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라이엇 게임즈도 LCK의 프랜차이즈 도입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습니다. 토너먼트로 진행되던 LCK가 리그로 바뀔 때도 이렇게 재미있는 요소를 왜 없애려 하냐는 반발이 있었습니다. 장기적으로 팀들이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풀리그 시스템으로 대회가 진행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2015년부터 풀리그를 택했습니다. 이제 리그를 더욱 안정화시키고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프랜차이즈 시스템 도입까지 고민하는 시간이 다가왔죠.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선택해야 하는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다면 라이엇 게임즈 내부의 의견뿐만 아니라 게임단과 모든 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어떻게 해야만 이 시스템을 기반으로 시장을 더욱 키워나가고 팬들에게 더 큰 재미를 주며 게임단에게 수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느냐가 과제로 주어질 것 같습니다.
김철학=그간 한국에서 진행된 투자는 내수에 맞는 규모였지, 활발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협회는 2019년이 한국 e스포츠가 주도권을 다시 가지고 가는 원년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를 위해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종목에 대한 편식이 심한 편입니다. 스타크래프트가 주류를 이뤘을 때에는 다른 e스포츠 종목에 대한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LoL이 인기를 끌고 있는 7년 동안은 LoL에만 집중해서 투자가 이뤄졌습니다. 이제는 시선을 넓힐 때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한국 시장만 볼 것이 아니라 글로벌화를 통해 더욱 키워나가야 합니다.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의 활성화로 e스포츠에서 다양한 경기와 스트리밍 교류를 통해 콘텐츠를 만들어내지만 한국은 다양성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실제로 글로벌 톱 5 종목이라 할 수 있는 LoL, 오버워치, 배틀 그라운드, 카운터 스트라이크, 도타2 가운데 한국에서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 종목은 LoL 뿐이죠. 한국은 외국보다 자본 투입이 적고 인구로 봤을 때 시장이 작으며 이에 따른 팬덤도 작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강점을 살려야 한다고 봅니다. e스포츠 노하우를 가진 인적 자원을 활용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국산 종목의 글로벌 e스포츠화도 시도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모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DES=대화를 나누다 보니 결국 한국 e스포츠 시장의 가장 큰 강점은 인적 자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14~15년도에 한국 선수들이 해외로 많이 진출하면서 허리 층이 없어졌습니다. 선수 수급에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이지훈=어려움이 있다라는 현상을 입증하고 있는 현상이 바로 그리핀과 샌드박스 게이밍, 담원 게이밍의 급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LCK에 있는 팀들이 리빌딩을 시도할 때 챌린저스 코리아에서 활약하는 선수를 데려오려고 시도하지만 챌린저스에서 뛰고 있는 게임단들은 승격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LCK 팀을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어서 선수를 보내려하지 않습니다. 순환 구조가 깨지면서 1부 게임단들은 솔로 랭크에서 잘하는 선수를 찾아다녔고 그러는 사이 1부와 2부의 차이가 좁혀지면서 역전에 가까운 상황까지 만들어졌죠. LCK의 모든 게임단이 톱 티어 선수들만으로 버틸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했기에 늦었지만 스카우터를 통해 선수를 물색하기 시작했고 인재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스카우터 직군을 처음 도입했을 때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한국 선수들의 외국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유망주들도 해외로 진출했는데 일부 선수들이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젠지의 스카우터라고 밝혀도 믿지 않을 때가 있어서 난감했죠. 젠지 e스포츠 공식 SNS를 통해 우리 팀 스카우터들을 소개한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LCK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팀들이 하부 팀을 구성해야 하는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어서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죠. 요즘에는 연습생들이 팀을 골라서 갈 정도에요. 앞으로는 음지에서 이뤄졌던 일들을 빨리 끌어올려서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할 것 같습니다.
김철학=한국 e스포츠는 스타크래프트라는 종목을 통해 프로 레벨은 비대하고 저변은 취약한 역피라미드 구조를 경험했습니다. 그나마도 준프로 선발전, 2부 리그 등 아마추어 선수들이 도전의 무대로 삼을 수 있는 대회를 만들면서 선수들을 수급했지만 전반적인 구조는 취약했습니다. LoL이 처한 상황도 비슷합니다. 지속성장 가능한 모델이 나와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취미로 즐기는 이용자들의 저변도 넓어야 하만 선수가 되고자 하는 선수들의 층도넓어질 것입니다. 지금부터 토대가 만들어져야 스폰서십이나 마케팅을 하려는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날 것입니다.
이정훈=챌린저스 코리아는 애시당초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한 등용문으로 만들어졌는데 최근에는 LCK의 경쟁자가 된 느낌입니다. 챌린저스 코리아 팀들은 LCK를 잠재적 경쟁자로 보고 나중에 승격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핀과 담원 게이밍, 샌드박스 게이밍이 실제로 그런 사례를 보여줬기 때문에 더욱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죠. 처음에는 솔로 랭크에서 높은 티어에 있는 게이머가 챌린저스 코리아를 거쳐 LCK로 진출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가는 챌린저스 코리아에서 활동하는 팀들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서 LCK로 직접 올라가고자 하는 팀들이 많아졌습니다. 원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이 또한 한국의 LoL e스포츠가 성장하는 자연스런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DES=한국 게임단들은 매년 선수 수급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선수들의 계약 기간이 짧기 때문이라는 항변도 나오고 있는데요. 1년 단위 계약이 갖고 있는 단점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정훈=선수들의 계약이 1년 단위로 진행되기에 스토브 리그가 열리면 선수 수급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저희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 한국처럼 선수 수급과 관련한 문제가 크게 불거지는 곳은 없습니다. 한국 선수들의 인기가 워낙 좋다 보니 한국 게임단들에게 이런 문제가 크리티컬하게 다가오고 있죠. 게임단들의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알고 있지만 라이엇 게임즈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동일하게 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스포츠 선수는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짧은데 계약 기간을 의무적으로 길게 가져가는 쪽으로 묶어버린다면 선수들에게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라이엇 게임즈 본사의 생각입니다.
김철학=선수의 권익을 생각한다면 짧은 선수 생활을 길게 만드는 것을 고민해야지, 계약 기간을 평균적인 선수 생활에 맞추려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던 임요환은 2002년부터 은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30대 초반까지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진정 선수를 위한다면 활동을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는 구조적인 고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선수 수급 문제를 해결하려고 성급하게 접근한다면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데이터를 충분히 쌓을 수 있다면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 리그 및 다양한 대회를 밑바탕에 두고 데이터를 축적해 나가면 게임단들이 선수 선발하기가 수월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아울러 자국 게임단에 입단할 때와 해외로 나갔을 때에 대한 규정을 세세하게 설정해서 선수와 게임단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LoL 종목에서 좋은 모델이 만들어진다면 다양한 e스포츠 종목에도 적용하면서 국산 종목의 글로벌 e스포츠화를 시도할 때에도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DES=한국 e스포츠 시장이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중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듣고 싶습니다.
서형석=아직 한국에서는 스포츠보다는 엔터테인먼트의 측면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입니다. e스포츠가 스포츠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정책 방향이 흘러갔고 정식 스포츠화를 추진하기 위해 대한체육회에 가입하려고 노력을 이어왔지만 팬들이 즐기는 문화라는 측면에서는 e스포츠가 갖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것이 접점을 늘리는 방법일 것입니다.
이지훈=젠지의 경우에도 한국 지사에는 마케팅 쪽 임직원이 많습니다. SNS나 유튜브를 비즈니스 모델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e스포츠는 온전하게 스포츠로 발전하고 있다기 보다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강해지고 있어요. 아이돌 문화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현장을 찾는 팬들이 늘고 있고 개인 방송을 통해 팬덤이 형성되는 경우가 있어서 엔터테인먼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듭니다. 스포츠인지 엔터테인먼트인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지는 것은 명확한 규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철학=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기가 좋은 시기에 스폰서십이 공격적으로 이뤄지는 건 일시적이거든요. 기반을 잘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빈다. 종목사, 게임단, 방송사, 협회 등 e스포츠와 직접 연관이 있는 주체들이 규정을 개선, 보완하고 지속성장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죠.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지거든요.
DES=이야기가 다시 돌아 e스포츠 시장의 지속적인 투자와 프랜차이즈의 도입으로 돌아왔는데요. 현재 프로게임단과 협회, 라이엇 게임즈는 어떠한 상황인지 그리고 어떤 발전 방향을 생각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철학=한국 e스포츠가 성장하기 위한 변곡점에 서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동호인과 아마추어, 프로 선수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층위를 다르게 만들어서 이들을 위한 다양한 수준의 대회가 만들어진다면 또 다른 수요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현재 부산, 광주, 대전, 경기도에 e스포츠 경기장을 짓겠다는 정책이 발표됐는데요. 이러한 인프라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수준의 대회들이 지속적으로 열려야 합니다. e스포츠가 민간 중심으로 발전해왔지만 정부가 최근 들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이럴 때 민관이 힘을 합쳐 체계를 다진다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지훈=우리 게임단은 당장 내년부터 오버워치 리그 홈경기를 진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라이엇 게임즈와 한국e스포츠협회의 이야기처럼 새로운 구조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눈으로 볼 수 있는 데이터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만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자료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 게임단들은 당장 성적을 내야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김철학=최근 정부에서 많은 관심을 쏟고 있지만 영리 비즈니스를 도울 수는 없기에 풀뿌리 e스포츠와 관련된 것만 진행하게 됩니다. 게임단 혼자서 이런 일을 진행할 수는 없으니 종목사와 협회, 방송사까지 힘을 합쳐서 한국 e스포츠가 갖고 있는 노하우를 데이터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지만 공통 분모를 찾는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정훈=프랜차이즈 도입을 놓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승강제가 존재하는 EPL을 보면 1부에서 20부까지 많은 팀이 있습니다. 반대로 MLB는 프랜차이즈를 적용하면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드래프트라는 시스템을 통해 프로의 등용문으로 삼고 있습니다. 라이엇 게임즈는 프랜차이즈와는 별개로 2군 리그와 아카데미 리그 등을 진행하고 한국e스포츠협회가 풀뿌리를 키워서 2군이나 아카데미로 올라가는 것을 도와주는것이 이상적인 발전 방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지훈=프로게임단이 운영하는 2부 팀끼리 리그를 만들어보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프랜차이즈를 찬성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카데미 게임단들이 자연스럽게 경험을 쌓을 수 있고 리그로 선수 수급도 가능하기 때문이죠.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때도 2군 리그에서 잘했던 선수들이 1군으로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김철학=계속 게임단과 종목사, 협회가 함께 회의를 이어가고 있으니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조율하라고 협회가 존재합니다만 실질적인 데이터를 수급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쉬운 예로 선수들의 연봉이나 게임단 운영 비용 등의 데이터가 공유된다면 정책으로 만들기가 수월할텐데 종목사들의 사내 정책이 다르다 보니 전체적으로 취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정훈=정보 공개가 중요한 부분이지만 프랜차이즈가 시작돼도 결속된 정도에 따라 공개되는 정보의 수준이 달라져서 확실하게 어떤 정보가 공개될 수 있을지 확답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김철학=중장기적인 정책을 위해서는 한국 e스포츠 선수들 등록 절차를 마련해 현황을 파악해야하고 각 종목과 게임단별 정보와 남녀 성비 등 각종 자료에 대한 공개도 함께 진행돼야 합니다. 다양한 e스포츠 구성원들이 협회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다 보니 진행 속도가 빠르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모두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하고 새로운 규칙과 규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분명히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부에서 계속.
진행=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정리=구남인 기자 (ni041372@dailyesports.com)
사진=박운성 기자(phot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