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프로즌' 김태일이 밝힌 #은퇴 #지도자 #행복론

2020-06-0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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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터키 팀으로 이적한 김태일은 1907 페네르바체를 터키 챔피언으로 만든 뒤 그 해 월드 챔피십(이하 롤드컵) 16강 본선까지 올려 놓으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김태일의 성공 사례를 본 한국 선수들은 터키 팀의 연이은 러브콜을 받았고 10명 넘는 선수들이 터키 리그에서 뛰면서 한국 용병 전성 시대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슈퍼매시브 e스포츠에서 '울프' 이재완과 함께 뛰었던 김태일은 롤드컵 진출이 좌절된 뒤 2020 시즌을 앞두고 멕시코 팀인 Xten e스포츠(이하 엑스텐)과 계약했다. 김태일이 멕시코로 자리를 옮기면서 라틴 아메리카 리그에 한국 용병 붐을 일으킬 수 있을까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김태일은 스프링까지만 뛰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은퇴를 택했고 코치로 변화를 시도했다.

마이너 지역에 진출한 한국 선수로는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냈던 김태일을 만나 은퇴를 결정한 이유와 코치로서의 목표를 들었다.

Q 멕시코 팀인 엑스텐으로 간다고 했을 때 터키 때처럼 또 하나의 신화를 쓸 줄 알았는데 은퇴라는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A 엑스텐이라는 팀 때문이 아니라 김태일이라는 개인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은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고 대회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여겼는데 솔로 랭크를 정말 하기가 싫었다. 그것 때문에 은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Q 프로 선수가 솔로 랭크가 싫어서 은퇴를 한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A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선수들은 솔로 랭크에서 플레이하면서 챔피언의 특성과 조합 등을 익힌다. 거기에서 숙련도를 높인 뒤 팀 훈련에서 전체적인 조화와 팀워크를 다진다. 솔로 랭크를 게을리해서는 선수로서의 발전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Q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솔로 랭크를 하기 싫었던 이유가 있나.
A 작년에 터키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솔로 랭크에서 챌린저를 달성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했다. 이 시기에 여자 친구가 정말 많이 도와줬다. 연습이라 치부할 수 있는 솔로 랭크이지만 챌린저 달성을 응원해줬고 실제로 목표에 도달했다. 그리고 멕시코 팀인 엑스텐과 계약이 체결되면서 시즌을 보내고 있는데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그 뒤로 솔로 랭크를 하게 되면 여자 친구 생각이 나면서 의욕이 떨어졌다. 트라우마에 사로 잡힌 느낌이었다.

Q 터키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에도 만났던 여자 친구였다고 알고 있다.
A 외국에서 용병으로 뛴 지 4년이 넘은 것 같다. 터키에서 첫 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힘을 준 친구였다.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함께 해준 사람이었다.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라고 멀리 떨어져 있고 자주 보지 못하니까 이별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헤어지긴 했지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Q 멕시코 리그는 터키 리그와 얼마나 다른가.
A 터키의 상위 팀과 멕시코의 상위 팀이 맞붙는다고 하면 터키가 조금 앞설 것 같다. 터키는 스포츠단을 운영하는 대기업들이 프로 게임단을 갖고 있어서 일찌감치 한국 선수들과 지도자들을 영입해서 리그의 실력을 끌어 올리려는 노력을 해왔고 그 덕에 실력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 라틴 아메리카 리그는 개인기에 의존할 것 같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직접 팀 생활을 해보고 상대해 보니까 운영과 조화에 방점을 두고 있더라. 여기에 비하면 터키는 즉흥적으로, 선수들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Q 슈퍼매시브에서 같이 있었던 김선묵 감독이 공교롭게도 올해 올 나이츠의 사령탑을 맡으면서 라틴 아메리카 리그에서 뛰었다.
A 내가 엑스텐에 입단하면서 라틴 아메리카 리그로 왔을 때 어떤 팀을 만나든 할 만하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선묵 감독님이 올 나이츠를 지도하면서 어려운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했고 경기를 치러보니 올 나이츠는 팀 게임을 하려고 노력했고 시즌 후반부에는 호흡이 잘 맞아 들어간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리고 올 나이츠에 있는 두 명의 한국 선수들이 용병 역할을 정말 잘해줬다. 그들이 중심을 잡아주니까 팀워크를 맞추는 것도 쉬웠을 것이다. 그 팀이 정글러를 교체했는데 원거리 딜러 출신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상대해봤더니 '김선묵 감독님이 직접 정글러로 뛰고 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했다.

Q 스프링 시즌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2주 동안 자가 격리를 하지 않았나.
A 멕시코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대유행할 때여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에는 2주 동안 자가 격리를 해야 했다. 그래서 이 인터뷰가 늦어지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은퇴를 해야 하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었다. 선수 활동을 이어가든지, 코치로 전향하든지, 군에 가든지 세 가지 선택지 중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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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은퇴를 확정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챌린저스 예선에 코치로 나왔다.
A 웨어아유프롬(Where Are You From; 이하 WAF)이라는 팀을 만났다. '스티치' 이승주, '크래시' 이동우, '들' 김들 등 롤드컵에 출전한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모여 있었고 2명의 신인들과 팀을 꾸려 챌린저스 승강전을 준비한다고 하더라. 원래는 나에게 미드 라이너를 뛰어 달라고 했는데 앞서 이야기한 이유 때문에 솔로 랭크를 하기 싫었고 선수 생활을 더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고사했다. 대신 선수들의 연습 경기를 잡아주고 분석하는 코치 역할을 하기로 했다. 자가 격리된 2주 동안 코치해줬고 실전에서도 1위로 통과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Q 챌린저스 승강전에서 코치로 공식 무대에 처음 섰다. '선수석에 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나.
A 밴픽 분석 노트를 들고 헤드셋을 끼고 선수들 뒤에 서있는데 그게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벤치에서 경기를 보는 것, 선수들과 피드백을 한 뒤 응원해주고 이기기 위해 밴픽을 하는 일 등 코치가 하는 일이 나와 더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날 비록 러너웨이에게 1대3으로 패하기는 했지만 배운 것이 많았고 지도자 생활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Q 챌린저스 승강전을 마치고 나서 SNS를 통해 선수 생활을 마치겠다는 뜻의 글을 남겼다.
A 은퇴에 대한 생각은 꽤 오래 내 머리 속에 있었다. 한국을 떠날 때부터 은퇴라는 글자와 함께 했다고 봐도 된다.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올해 2월부터였다. 솔로 랭크를 하지 못할 정도로 트라우마가 심해졌고 그로 인해 팀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겹쳐지니까 은퇴라는 글자가 다시 생각나더라.

Q 게임은 언제부터 했나.
Q LoL을 시작한 것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니까 9년 정도 됐다. 선수 생활은 7년 가량 한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한 일이 게임이고 이전까지 한 번도 재미없다,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은퇴를 고민하던 시기에는 처음으로 게임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더라. 엑스텐과의 계약이 올해까지여서 서머 시즌을 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고 해서 내 행복도가 올라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LoL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마다 불행해질 것 같아서 팀을 나왔고 은퇴를 결심했다.

Q 본격적인 코치 생활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도자로 LoL을 대했을 때에는 기분이 달랐나.
A 그 점이 정말 희한했다. 선수였을 때에는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부감이 들었던 LoL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기를 봐주고 장단점을 찾아주는 코치의 입장에서 접했을 때에는 또 다른 재미가 생겼다. 2주 동안 WAF 선수들의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 보고 조언하고 밴픽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LoL의 새로운 면을 봤다. 그리고 우스갯소리이지만 내가 어떤 팀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챌린저를 목표로 죽어라 솔로 랭크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웃음). 그 트라우마를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이 가장 좋다.

Q 어떤 코치가 되고 싶은가.
A 선수 시절 다양한 스타일의 감독님들과 코치님들을 많이 만났다. 누구 하나의 스타일을 최고라고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능력 있고 좋은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향하는 코치 스타일, 목표로 하는 코칭의 결과는 설정해놓았지만 지도자로서의 롤모델은 세우지 못했다. 나를 가르쳐주신 지도자들의 좋은 점을 다 받아들여서 좋은 코치가 되고 싶다는 것이 지금 드릴 수 있는 말씀인 것 같다.

Q 그렇다면 코치로서의 목표는 무엇인가.
A 대부분의 팀들이 상대 팀을 분석할 때 선수에 대해 견제를 한다. 실제로 경기를 치르는 사람이 선수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목표로 하는 팀은 상대로부터 '저 팀은 코치도 견제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팀이다. 코치가 갖고 있는 밴픽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고 실전에 반영하며 깔끔하고 정확한 피드백을 통해 선수들의 경기력을 현장에서 끌어 올릴 수 있는 코치가 되고 싶다.

Q 갈 곳은 정했나.
A 이 인터뷰가 끝난 뒤 브리온 블레이드와 최종 면접을 하러 간다. 특이 사항이 없다면 아마도 계약할 것 같다.

Q 브리온 블레이드로 정한 이유가 았나.
A 코치로서 내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볼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이번 시즌은 쉬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브리온 블레이드가 '우리 팀에 와서 능력을 탐색해보라'라면서 손을 내밀어 주셨다. 처음 시작하는 코치 생활이기에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단장님, 감독님들에게 물어가면서 배우겠다.

6월 4일 진행된 이 인터뷰 이후 김태일은 브리온 블레이드의 코치로 정식 계약을 체결하면서 지도자로 전향했다. 마이너 지역에 한국 선수의 위용을 전파했던 김태일이 브리온 블레이드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길 기원한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